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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08. 2020

그깟 하겐다즈가 뭐라고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H은행에서 일을 한지 이제 한 달이 막 지났다. 연말엔 회식이 많았다. 지점장님이 승진하셔서 축하연도 함께 했다. 그리고 지점을 떠나는 분들과 인사도 나눴다. 그렇게 연말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새해가 왔다.     


새해가 왔고, 은행엔 새 사람들이 왔다. 그중에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아무래도 지점장님이다. 새롭게 오신 지점장님도 막 승진을 하신 분이라 내가 있던 지점에 지점장으로 첫 발령을 받으셨다. 새해 첫날 출근을 하니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은 새로 온 지점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000 지점장 예전에 나랑 같이 근무했던 언니랑 같은 지점에 있었는데 좀 또라이라고 하더라. 아씨 왜 하필 저 사람이 걸려서는 짜증 나네.”

“그런데 차장님 지점장 어디 사는지 아세요? 000 아파트 산다고 하던데 거기 매매가 엄청 비싸지 않아요?”

“어쩐지 타고 다니는 차만 봐도 딱 알지. 원래 금수 저였나 봐. 그런 사람이 좀 또라이가 많아 올해도 글렀다 글렀어.”     


처음 보는 사람을 그 사람이 어디에서 살고 뭘 타고 다니는지만 보고 판단하는 그들이 신기했다. 마치 드라마에서 나오던 장면을 실제로 보는 기분이라 느낌이 묘했다. 티브이 속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 사람들이었다. 내가 살던 부산은 제2의 도시이긴 하지만 해운대구와 수영구를 제외한 다른 동네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살림살이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 집이 잘살고 누구 집이 못 살고 하는 것들은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이곳이 서울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렇다. 난 서울에 살고 있었다.     


대부분이 정규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소수의 비정규직은 아무래도 그들과 많은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도 ‘급’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은행원들은 나에게 자주 심부름을 시켰다. 우체국과 법원은 기본이고, 커피 심부름이나 과자 심부름도 자주 했다. 4시가 되고 나면 손님들을 받지 않으니 주전부리들을 펼쳐 놓고 남은 업무를 하기 위함이다. 하루는 여자 차장이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말했다.     


“희재 씨 마트 가서 아이스크림 좀 사 와 줘. 여기 카드 있으니까. 갔다 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는 말은 없었다. 그냥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자주 사 먹는 아주 일반적인 아이스크림들을 사 들고 들어갔다. 예를 들어 죠스바, 돼지바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차장은 아이스크림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게 뭐야. 얘도 아니고 뭘 이런 걸 사 왔어? 하겐다즈 안 먹어? 그걸 사 와야지 이게 뭐야 진짜.”     


그녀의 말에 난 무안해졌다. 사실 그땐 하겐다즈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게 뭐지? 난 그냥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해야 아이스크림을 사 왔을 뿐인데 그녀는 그런 나에게 마치 약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던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난 말했다.     


“전 그냥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하셔서 그렇게 사 온 건데요.”

“내가 하겐다즈 사 오라고 안 그랬어?”

“네.”
 “다음부턴 이런 거 사 오지 마. 이거 너 가져가서 먹어.”     


내가 눈가 없고, 센스가 없었던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커피를 주문해 놓고 어떤 커피를 마실지 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지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실 건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열이 받아서 그냥 아이스크림들을 쓰레기통에 다 던져 버렸다.     



뒤늦게 하겐다즈가 뭔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것은 보통 편의점에 있는 아이스크림 통에 있지 않고, 냉동식품이 있는 곳에 비치되어 있다.(물론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 하겐다즈는 다른 싸구려 아이스크림과는 급이 다른 아이스크림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과감히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가격이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오천 원이 넘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쭈쭈바들과는 급이 달랐다. 그들은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난 이런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야.’ 같은 걸 과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비싼 만큼 맛도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자신들의 겉모습에 많은 비중을 들인다. 비싼 옷을 입고 다니고, 메이커가 들어간 아파트에 살며,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SNS에는 그런 모습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지만, 내면에는 나는 너와는 급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욕구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하겐다즈를 모르는 나를 앞에 두고 그것도 모르냐고 비아냥 거리던 그 사람처럼 말이다.


하겐다즈는 마치 정규직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정규직인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같이 느껴졌다. 난 비정규직이니까. 그냥 천 원짜리 싸구려 쭈쭈바나 먹는 것이었을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이 나의 위치를 정해 준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몰랐다. 그깟 하겐다즈가 뭐라고. 비싸면 뭐 얼마나 비싸다고, 맛있으면 뭐 얼마나 맛있다고 이 난리들인지. 그래 그까짓 거 나도 사 먹을 수 있다고, 내가 고작 오천 원이 없어서 못 사 먹은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 나도 한 번 먹어주지.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그 뒤로 난 하겐다즈만 보면 당시의 일이 떠오른다. 아마도 나에게 하겐다즈는 잊히지 않을 것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하겐다즈를 먹으며 생각했다.


“너무 달다. 살찔 거 같아. 이런 걸 왜 먹어. 그냥 돼지바나 먹어야지.”



돼지바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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