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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09. 2020

은행은 양의 탈을 쓴 늑대 같다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에 처음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계좌를 만드는 것이었다. 월급을 받으려면 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만든 것이 바로 신용카드이다. 그때까지 신용카드를 써 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엄마에게 신용카드를 빌리지 않아도 됐다. 뭔가 드디어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약간의 불안만 빼면 다 괜찮았다. 사실 굳이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아도 됐다. 체크카드를 쓰면 됐지만 일단은 은행원들이 만들어 달라는 권유도 있었고, 나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돈 때문이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바로 은행 경비원이 된 것이 아니라. 약간의 텀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돈을 거의 다 까먹어 정말 굶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나에게 신용카드는 마치 구세주 같은 것이었다. 돈이 없어도 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신용카드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신용카드는 한 달 동안 쓴 돈을 다음 달 결제일에 한꺼번에 결제가 된다. 만약 통장에 돈이 없으면 신용은 추락하게 되고, 그것이 지속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내 이름으로 된 통장도 만들 수 없고, 금융적 피해를 막심하게 입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만들어 돌려막기 식으로 쓰다가 결국엔 모든 은행의 금융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신용카드는 좋지 않은 거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를 써보니 이보다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쪼개서 돈을 내는 거나 한꺼번에 돈을 내는 거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신용카드는 할부도 할 수 있어, 금액이 조금 큰 물건은 돈을 나눠서 낼 수도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용카드를 쓰면 쓸수록 나의 소비는 점점 늘어만 갔고, 급기야 내 월급 이상으로 돈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돈을 쓴다는 느낌보단 그냥 카드를 긁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쓰게 된 것 같다. 난 그때 신용카드를 잘라 버려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늪에 빠진 이상 쉽게 나올 수 없었다.     



신용카드를 쓰니 은행에서 자주 연락이 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으면 전부 대출과 관련된 전화였다. 태어나서 아직 대출을 받아 본 적 없는 나에게 그 전화는 그냥 무시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그날은 왠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한 번 들어 봤다. 그리고 그날 카드 대출을 받았다. 이유는 밀려있던 월세를 내야 하는데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깐 외근을 하러 밖을 나와 지하철을 탔는데 집주인이 전화가 왔다. 6개월 치 밀린 월세를 빨리 내라는 독촉 전화였다. 당시 낙성대역 반지하 원룸의 월세는 한 달에 20만 원이었다. 총 120만 원을 내야 하는데 그 큰 금액이 당장 없었다. 그래서 어떡하지 고민하다 결국 카드 대출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딱 120만 원만 받으려고 했다. 그래서 조금씩 갚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카드사 직원은 일단 큰돈을 받아 놓고, 쓰지 않는 돈은 바로 다시 갚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받아둬 라고 권유했다. 혹시 또 큰돈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난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일단 500만 원을 대출받았다. 막상 계좌에 500만 원이 생기니 부자 된 느낌이었다. 뭔가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밀린 월세를 다 내고 나머지 금액은 다시 반납해야 했지만 왠지 그러기 싫었다. 그 돈이 진짜 내 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드 대출은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만 만들면 누구나 천만 원 이상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자가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정말 돈이 급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때 난 그런 걸 잘 몰랐다. 이자가 몇 프로고 그게 얼마나 되는지 피부로 실감하지 못했다. 금융적 지식이 거의 없던 난, 그저 이자라고 하면 사채업자들이 받는 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은행이 그 이자를 받아먹고 사는 조직이라는 걸 은행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카드 대출은 금방 갚았다. 하지만 그 후로 조금만 돈이 급하면 카드 대출을 받는 걸 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금액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새 눈처럼 불어나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그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은행에서 다시 카드 대출을 받고 다시 이걸 갚기 위해 다른 은행에서 다시 대출을 받는 상상을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뉴스에서 본 신용카드를 돌려 막는 형태였다. 그걸 알고 난 후론 더 이상 카드 대출은 받지 않게 되었다.



쉽게 얻은 돈은 결국 대가를 바라게 된다. 뭐든 쉽게 얻은 것은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신용카드는 참 편리하고 간편하다. 돈이 없어도 돈을 쓸 수 있다. 카드 대출도 간편하고 편리하다. 쉽게 큰돈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결국 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것을 곧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은행과 사채업이 다른 점이 뭘까 생각해 봤다. 은행은 합법이고 사채는 불법이다. 그 기준은 뭘까? 물론 사채는 이자가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이겠지만 생각해 보면, 둘 다 형태는 비슷하다. 어쩌면 사채보다 더 무서운 게 은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사채는 무서워서 쓰지 않지만 은행은 우리의 생활과 너무 밀접하게 닿아 있고, 너무 친절해서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빌려도 써도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오늘도 그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뿌린다. 그리고 나처럼 순진한 사람들은 걸려들어 이자를 야금야금 뜯어 먹히게 된다. 은행은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 같다. 순진한 양들은 어느새 늑대에게 살을 조금씩 뜯게 먹히다 결국,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속지 말자. 원래 달콤한 것은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상단 그림 출처 : https://blog.naver.com/2codms2/22022216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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