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부터 갖고 나온 조각이 많았다. 음악, 그림, 글, 두뇌, 운동에 관한 재능들. 넓게들 분포해 있던 여러 빛들 덕에 어려운 게 없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해냈다.어딘가에서 자신의 단점을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답했다.
단점이 없는 게 단점입니다.
아차. 나는 재수 없는 게 단점이었나 보다.
요즘 시대에 또 빠질 수 없는 게 MBTI 아닌가. 내 MBTI는 ENTJ다. 단연코 가장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재수 없다는 걸 잘 알기도 한다.
돈을 흥청망청 쓰고 살진 않았지만 모자람 없이 자랐고 아빠는 항상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열정맨이라 나 역시 그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조금만 노력해도 어느 레벨까진 순식간에 올랐고 그래서 다른 사람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은 걸 자랑으로 여겼다. '아, 나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던데.' 속으로 으스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노력을 하는 것 자체를 등한시하기도 했다. 노력해서 더 이상 잘하지 못한다면 내 실력을 나도 깨닫게 될 테니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까지 하는 재능의 영역에서만 유희를 즐겼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는 게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는 척이 늘었다. 완전히 무언가를 알지 않고도 누구를 가르치듯 말하길 잘한다. 짧게 얻은 정보도 금방 습득하기에 당연히 상대방보다 내가 뛰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다. 아, 이런. 글을 쓰는 지금 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모난 나란 사람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아주 그득하다 못해 줄줄 흘렀다. 어디서나 당당했고 어디서나 우아하게 행동하려 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당연하게 나를 좋아했다. 그 반대로 당연하게 나를 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중심에 있는 게 당연했고 쉬웠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상처를 준 면면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때 정말 소심했던 한 친구. 그 애가 앞머리를 자르고 온 날 어떠냐고 물어봤다. 냉정하게 보면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해줄까 좋게 말해줄까라고 말했고 그 애는 불안에 찬 눈으로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상처받지 말라고 말한 뒤에 이상하고 전이 더 낫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친구는 상처를 받았을 테다.
나는 그게 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말해주는 것. 그리고 어떻게 말해줄까 제시한 것부터 배려도 있는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선택지를 내민 것부터 그 애에게 상처였으리라. 사실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하는, 아니 안 하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기도 했다. 나는 뻔한 사람이 아니라 솔직하고 멋진 사람이었을 테다. 정말 그랬을까?
그래 내가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웬만해선 내가 맞았다고 아직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틀렸던 것도 당연히 있다.
이것은 스스로에 취해있던 내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 아직도 스스로에게 잔뜩 취해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이야기이다. 부디 이 이야기가 어떤 점에선 끄덕임을 또 다른 점에선 보다 더 나은 발견을 할 수 있게 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 같이 사는 건 틀렸다고? 그렇다면 배울 점이 또 생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 덕에 당신의 흑역사는 안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