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쥔공 Apr 20. 2024

믿을 수 없는 면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었을까

대학교 3학년 2학기, 스타벅스 파트너로 입사했다. 학업을 병행하는 와중이라 마감 근무만 가능한데도 다행히 점장님께서 스케줄을 맞춰주셨고 기분 좋게 끝난 면접에 일도 기분 좋게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은 완벽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내 첫 스타벅스 근무는 비참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나는 내게 우울증이 있다는 걸 막 자각했던 상태였다. 입사날에 처음 병원을 찾았고 우울증 약을 먹으며 스타벅스에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우울증의 무서운 부분은 다만 우울한 기분뿐만이 아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 내가 우울증을 앓던 기간은 이미 4년이 넘었다. 그동안 뇌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꽤 머리가 좋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기억력이나 학습능력 같은 것이 처참하게 떨어져 있었고 그런 와중에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파트너도 존재했다. 당시 매장은 그 한 파트너 외에 전부 그 매장에서 뽑히고 진급한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한 점장님 밑에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일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파트너는 제주도에서 전배를 왔고 매뉴얼이 존재한대도 매장마다의 차이점 역시 확실히 존재하기에 그 파트너가 일하는 방식은 다른 파트너들이 알려주는 방식과 달랐다.




나는 그 파트너 외에 모든 사람이 말하는 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일을 했고, 그는 왜 자기 말을 듣지 않냐고 자기를 무시하냐며 내게 화내고 짜증 내는 식이었다. 하지만 점장님부터 다수가 시행하고 있는 방법을 거스르고 그 파트너의 의견을 선택하는 게 더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파트너 앞에서만은 맞춰줬으면 나았겠다던가 등을 생각할 여유도 있지만 그때는 다른 파트너들한텐 틀렸다느니 바꾸라느니 말하지도 않으면서 나한테만 감정적으로 피드백하는 그의 말을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부딪히는 사람이 있는 것과는 또 별개로, 생각보다 스타벅스 파트너는 쉽지 않다. 외울 매뉴얼도 굉장히 많고 기본적인 바리스타 업무와 레시피뿐만 아니라 매번 새로 시작되는 프로모션, 이벤트, 여러 공지들까지 꼼꼼히 외워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음료 레시피가 많아도 너무 많다. 입사하고 한 달 내로 대부분의 것을 배우고 익혔지만 레시피만큼은 확신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출근 전에 매번 다시 레시피를 확인하고 들어갔다. 반년동안 그랬으니 내가 얼마나 학습이 어려웠던 상태인지, 그리고 그걸 완벽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집착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랬기에 큰 실수는 없이 잘 지낼 수 있었고, 매번 다시 외우고 들어간 덕에 다시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를 괴롭히는 파트너도 있었지만 다른 파트너들은 잘 대해주고 나름 친하게 지내며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었기에 즐겁게 일을 하는 중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그렇게 지낸 지 6개월, 점장님과 면담이 잡혔다.








파트너들이 ㅇㅇ이랑 일하기 힘들어해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럼 나랑 웃고 떠들며 지냈던 시간들은 뭔지. 내가 현재 상태에 안주하고 더 발전하지 않은 게 문제인지. 아니면 쓸데없이 말을 걸었던 게 불편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나랑 일하는 상황 자체가 싫었던 건지. 어떤 것에서 그렇게 힘들어했던 건지. 지금에서도, 나는 추측만 할 뿐 확실히 알지 못한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점장님은 내게 저렇게 말하고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알아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알아서 퇴사를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의 바람대로 나는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결정했다. 한 달 정도 새로운 파트너를 뽑고 교육시키는 시간으로 잡고 그렇게 내 첫 스타벅스 경험은 7개월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과연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나랑 일하기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딱 한 사람에게서 들었다면 괜찮았다. 근데 함께 웃고 떠들고 힘든 시간에도 이겨냈던 파트너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단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전부가 나를 싫어하는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을까? 안 그래도 무겁게 가라앉은 머리가 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렇게 잘못했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누군가는 이렇게 되기 전에 말을 했어야지. 고쳐달라고 하면 고쳤을 텐데. 명확하게 뭐가 문제라는 것도 정의되지 않은 채 나는 그냥 그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는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을 더 일하며 그 사람들 앞에서 전과 같이 웃기도, 전과 같이 대화하기도 너무 힘들었다. 내게 따뜻하게 대해줬다고, 꽤 가까운 사이라 생각했던 순간들이 몇 번이나 떠올랐다. 그리고 그게 무서웠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리고 그들이 바랐던 선택은 퇴사였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 이후로 내 우울증은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였고 한동안 암흑과 같은 시기를 보냈다. 그 뒤 스타벅스는 절대 다시 다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걸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바꿔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스타벅스에 재입사해 잘 다니는 중이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 좋은 사람, 애매한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있다는 걸 느끼고 겪어왔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피한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 않을 리 없었고 그렇다면 결국 내 잘못이 없다 해도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건 내가 될 테니까.





사진: UnsplashKarsten Winegeart
작가의 이전글 앞뒤가 똑같을 순 없는 거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