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직원들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기술은커트나 펌을 하는 기술 못지않다.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다 이제 갓 스무 살 정도 된 스텝이 묻는다.
"결혼할 사람은 느낌이 딱 오나요?"
"아니요. 그냥 이게 막차다 싶으면 타면 돼요."
갑자기 내 입에서왜 이런 대답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크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나도 막차를 타는 심정으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을까? 아니었다. 나는 남편의 인생에 내가 막차일 것 같아서 타라고 했다. 그래서 프러포즈도 내가 했다. 너무 사랑해서, 안 보면 죽을 것 같아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 남자랑 결혼하지 않으면 이 남자는 결혼을 못할 것 같아서였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오지랖이 나왔을까.
그렇게 한 결혼이니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드라마에서 보던 달달한 신혼 생활은 우리에게 없었다. 우리는 성격도 달랐고 비슷한 취미도 없었으며 뜨겁게 사랑하지도 않았다. 이런 우리가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처음엔 다 그런 거라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인 거라고. 내가 보기에 우리는 절대로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살다 보니 우리 사이에 뜨거운 사랑이 없다는 게 도움이 되었다. 크고 작은 일들로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지만 그중에 '사랑싸움'은 없었다. 둘 사이에 엄청난 사랑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집착, 질투, 기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실망 등이 있을 텐데 우리에게는 그런 게 없다. 만약 눈만 마주쳐도 두근두근 떨리는 사람이랑 결혼을 했다면 매일매일 요동치는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또, 처음에는 단점인 줄 알았는데 장점이었던 것도 있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남편은 술을 안 마신다. 술을 안 마시는 남자가 존재한다는 걸 남편 덕에 알았다. 술도 안 마시는 남자랑 무슨 재미로 사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술을 안 마시는 게 너무 좋다. 술을 안 마시니 퇴근하면 꼬박꼬박 집으로 오고, 내가 술을 마셔도 운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가 숙취와 싸우고 있으면 집안일과 육아도 맡아서 해준다. 다음 생에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글쎄요.'라고 하겠지만 다음 생에도 술을 안 마시는 남자와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당연하죠.'라고 할 것 같다.
결혼할 사람은 느낌이 딱 오나요?
내 경우에는 아닌 것 같다. 살면서 몇 번의 연애를 하다 그중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거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에는 사랑 말고도 수없이 많은 변수들이 있다. 예를 들면 타이밍, 나이, 종교, 직업, 경제력 등이다. 물론 느낌이 딱 와서 결혼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게 아닌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가슴 뛰는 사랑으로 결혼 한 부부들도 많다. 하지만 동료애나 인류애 같은 마음으로 결혼해서잘 살고 있는 우리 같은 부부도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만큼 다양한 결혼이 있다. 어떤 결혼이든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된다. 크게 부러워할 결혼도 크게 안타까워할 결혼도 없는 것 같다. '살아보니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어떤 결혼을 하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프러포즈를 하겠다면 말리고 싶다. 나는 프러포즈를 내가 했다는 이유로 "결혼해달라고 매달려서결혼해줬더니~"로 시작하는 남편의 농담을 들어야 하는데 이건 내 결혼 생활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