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걷는 시간_두번째
새로운 생명의 존재를 확인하다.
몇 달간 봐왔던 무뚝뚝한 의사의 입이 약간은 위로 올라갔다는 착각을 하던 차에 그가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임신 5주입니다"
징- 하고 머리가 울렸다. 반년 동안 듣고 싶었던 소식이라 펑-하고 축포가 터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작은 소리였다. 임신 초반에 유의해야 하는 주의사항과 다음 내진 일정을 안내받고 병원문을 나오는데 유난히 햇살이 참 좋았다. 그래서 아이의 태명을 햇살이로 지었다. 햇살이.
사실 실감은 잘 나지 않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점을 가리키며 이게 우리 아기라고 말하는데 크게 와 닿진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해야 할 건 다 해나갔다. 사회통념의 매뉴얼대로 태명을 짓고, 우선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고 집에 와서는 언제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알릴지를 상의하며 모든 집안일을 내가 가져왔다.
아내가 사소한 집안일이라도 하다가 배가 당기거나 머리가 아파하면 그것에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작은 변수도 없애고 싶었다. 그게 내 일인 양 느껴졌다.
아이 알람 어플을 설치하고 하루에 몇 번씩이고 확인하며 아이를 대신해서 전달해주는 새로운 소식에 눈을 고정했다. 콩알보다도 작던 아이가 체리가 되고 바나나가 되고 멜론이 되면서 우리의 공간도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아이 전용 매트 사기, 아이 전용 옷 사기, 아이 전용 세제 사기, 아이를 맞이할 환영카드 준비하기 등등..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아 내가 사랑받는 곳에 왔구나. 참 따듯하다'라는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해 아내와 나는 부단히 도 노력했다.
그리고 새 생명을 위해 처음 보는 사람들도 각자 가지고 있는 따스함을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임산부 배지를 달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양보해주고 배려해주었다. 항상 감사했고 감사했다. 우리가 준비한 어떤 따스함보다도 높은 차원의 따스함이었다.
출근할 때나 퇴근하고 나서, 그리고 잠들기 전 아이의 태동을 함께 느끼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가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육아휴직을 들어갔다. 출산 전 비만을 극도로 경계한 아내는 휴직기간에도 자제력을 잃지 않고 아이를 만날 날을 준비했다.
그리고 출산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병원을 방문했는데, 아이가 나올 준비를 이미 다 해서 예정일보다 앞당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서둘러 입원용 짐을 싸고 촉진제를 맞으며 아이가 보내올 신호를 기다렸다.
8시간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자 병원에서는 제왕절개를 권유했고 우리는 잠깐의 상의 끝에 받아들였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술복이 입혀지고 차가운 집기 소리가 들리고 수술실에 의사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갔다. 10개월 동안 기다려온 그 존재를 마주하기 몇 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