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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준호 Nov 25. 2019

가장 고통스러웠을 당신의 하루를 위하여

자살하는사람이 많아진다.

정확히는 자살시도를 하는사람이 많아지고있다.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걸까

누군가의 빛이었고 누군가의 희망이었고 누군가의 사랑이었으며 누군가의 버팀목으로 지내왔을 숱한 시간들을 저버린채 왜 막다른길로 가버린걸까.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관심을 바라는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건물 위에서 자살소동을 벌인 사람의 뉴스를 보았다.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에 그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기사의 주인공은 건물 위 창틀에 앉아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있었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119구급대원들이 출동했다. 그리고 다행히 인명피해없이 구조되었다는 기사였다.

해당 기사의 리플들은 대부분 그 사람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민폐다, 교통체증생긴다, 왜저러냐 등등. 그 사람이 왜 소동을 벌이게 됬는지에 대한 물음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기사에서도.


자살을해도 뉴스한줄 안나오는세상.

간신히 목숨을 구해도 조롱밖에 줄것없는 사람들. 

이런 각박함속에서 인간이 지녀야할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것은 생존투쟁에 가깝다.

만인에 대한 개인의 투쟁이기 때문에 살아가기위해 행하는 모든 과정들이 외롭고 상처받다가 낙오한다. 그리고 아직 낙오하지 않은사람은 낙오자를 손가락질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거기까진 아니라는 마음에 안도하며 뿌듯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직장문제일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일지 또는 금전문제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상처는 마치 한여름에 등 한가운데가 가려운 느낌같아서 혼자서는 긁을 수 없다. 누군가 어루만져주고 안아주어야만 흉지지않고 치유가 되는 상처다. 

나를 용서받지못하고 너를 포용하지못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쌓이고 쌓여야 양날의 검을 칼집에 넣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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