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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로컬 학교 생활 @싱가포르

by 정대표

취업 비자 자녀 신분인 DP로 운이 좋게 싱가포르 로컬 학교에 입학한 게 벌써 4년 전이다. 처음엔 집과 학교가 멀어 매일 왕복 40~50분을 운전했지만, 차츰 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그래도 여전히 15분은 차를 타야 했는데, 영주권을 받고 나서야 드디어 걸어 다닐 수 있는 집 근처 학교로 전학할 수 있었다. 외국인은 운 좋게 로컬 학교에 입학해도 전학이 불가능하지만, 영주권자는 자리가 있다면 가능하다. 물론 명문 초등학교는 시민권자 우선이라 어렵긴 하다.



옮긴 학교는 집에서도 가깝지만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학생만 다니는 초등학교다. 한국 초등학교는 모두 공학이기도 하고, 난 중고등학교를 모두 공학으로 다녀 이런 게 조금은 신기하다. 특정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라 종교색이 짙진 않지만 종교 관련 수업이 있고, 아이들 교복을 보면 평범한 학교는 아닐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규모도 크고 반 학생 수도 많은 데다 특별활동 선택지도 넓다.



Term 3부터 아이들이 새 학교를 다녔고, 이번에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그리 좋지 않다. 싱가포르는 4학년까지는 1~4단계로 평가하고, 레벨 1이 가장 좋은 점수다. 괜찮은 성적을 받던 아이들 점수가 전반적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학교마다 진도가 달라 아이들이 모르는 것도 많이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과외를 붙이고 학원을 보내는 건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여기서도 기본에 가까운 것 같다. 애들 공부를 도와주다 보면 나조차도 이렇게 어려운 걸 배우고 있는 게 신기하니, 애들이 그저 공부를 따라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성적 하락이 단순히 적응 문제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싱가포르 로컬 학교를 다니는 이상 PSLE라 불리는 졸업 시험을 봐야 하고, 그 성적에 따라 중학교 진학이 결정된다. 좋은 중학교를 갈수록 소위 명문대 진학 확률이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에 많은 초등학교 6학년을 둔 싱가포르 부모들도 이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이런 점은 수험생을 둔 여느 한국 부모와 다르지 않다. 우리 아이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공부에 더 신경 써야만 한다.



명문고등학교와 명문 대학교를 나온 나로서는 그 명문이라는 간판이 세상에서 얼마나 유리하게 작용하는지 너무 잘 안다. 스마트하다는 걸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얼마나 유리한지 회사 생활에서, 그리고 그 회사 경력으로 창업한 지금도 절절히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이 굳이 최고의 학교에 진학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명문 학교를 나온 내가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 - 좋은 사람을 만나고, 용기 내어 창업하고, 가족과 함께 웃는 시간들 - 은 학벌과 무관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교육 환경이 주는 기회의 문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창업가로 살면서 배운 건,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과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이 시험 점수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마다 아이들에게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라고 묻는다. 성적표의 레벨보다 아이들이 신나게 하루를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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