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라는 프레임

말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크고 강하다

by 서이담

회사에서 가장 빨리 퍼지는 건 택배도 보고서도 아니다. 바로 ‘소문’이다. 요즘 말로는 카더라 통신이다. 누가 어떤 성격이라는 말, 어떤 부서는 분위기가 안 좋다는 말, 회사에서 수주한 다음 브랜드는 뭐라는 내용 등 소문의 범위와 내용은 다양했다.


가볍고 시시콜콜한 비밀연애 이야기부터 크게는 회사 대외적인 이야기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은 사실은 이미 조금씩 변형된다.


그들에게 소문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어떤 프레임이 씌워진다.


말이 만든 이미지는 곧 상대방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가령 “저 사람은 예민 까칠 최고봉이래. 사람들이 같이 일하기 싫어해”라는 말 한마디는 실제 경험보다 크게 작용한다. 같이 일할 때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없던 불편함도 생긴다. 신입 기획자로 입사 후 사수 J 대리는 나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별명처럼 만들어 내게 전했다. 친절하게 배경설명도 함께 곁들어서 말이다.


“A 대리는 고집이 세. 클라이언트 지시대로 안 하기도 하니까 강하게 말해야 해”
“B는 작년에 새로 들어온 직원인데 무뚝뚝하고 말이 없어. 까칠한 스타일이야.”
“C 대리는 워커홀릭이야. 일밖에 몰라 일 없어도 주말에 출근한다니까”
그들에 대해 묻지도 않았으나 사수는 온갖 티엠아이를 내게 전달했다. 사람들에 대해 미리 아는 게 득인지 오히려 좋은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신입사원이었으니까.

그들의 성향과 라이프 스타일, 일하는 방식을 알 지언정 어차피 함께 일해야 한다.



사실보다 중요한 건 겪어보는 것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그 사람과 일하며 직접 느낀 감각이다. 내가 경험한 행동과 태도, 그리고 내 안에서 생겨난 인상 그게 더 중요했다. 그들과 일 년 넘게 일하며 깨달았다.
J 사수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기획자는 의도에 맞게 사용자와 내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웹 혹은 앱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람을 통솔하고 이끄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이 일을 하면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는 상대에게 가벼운 농담이나 질문 던지기를 잘한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는 ‘이게 뭐지?’ ‘저 사람 별나다’라는 들을 때가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너니까 가능했던 행동’이라며 웃는다. 무뚝뚝하고 차갑다는 개발자도 지금까지 연락할 만큼 친해졌다. 당시 나는 메신저로 말하기보다 직접 찾아가 수정사항을 말하며 화면 내용을 설명했다. 신입이라 어리버리했는데 오히려 내가 이해 못 하는 부분을 상대방이 짚어줬다.


그때 왜 그랬냐고 물으니 내가 답답했다고 한다. 디자이너 E 과장님은 결혼식, 아이 돌잔치를 축하해 줄 만큼의 사이가 됐다. 누군가의 소문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역시 누군가의 소문 속 주인공이 된다. 그때 비로소 현타를 맞는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어도 이야기를 믿고 이미지가 형성되는구나”


한 번은 이런 소문도 있었다.
당시 회사 대표님의 아내분이 디자이너팀 실장님이었는데 우연히 나와 성이 같았다. 게다가 회사 워크숍 당일 내 업무처리가 늦어져 실장님의 차를 얻어 타게 됐고 실장님의 친인척이라는 소문 속 주인공이 되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소문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몇몇 사람은 나를 보며 대우가 달라지거나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소문은 사실과 관계없이 사람을 포장하고 다른 사람들을 진짜인 양 믿게 한다. 소문은 때론 칼날처럼 누구를 베기도 하지만 방패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다.

사실이든 아니든, 결국 내 안에 남는 건 내가 느낀 감정이니까.
회사 안 소문은 공기처럼 떠다닌다. 잡히지도 않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소문에 휘둘리기보다는 경험에 귀를 기울여보자. 때론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별거 아닌 것들은 흘려듣자. 그것이 소문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치고 빠지기 회식 생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