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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와 신앙 사이, 회사 예배의 풍경

회의실이 예배당이 되던 날들

by 서이담

주마다 한번, 출근을 하면 제일 큰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 노트북 타자 소리 대신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고 PPT 대신 빔프로젝터 화면에는 찬송가 가사가 띄워져 있었다. 적막을 깨고 묵직한 중년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회사 담당 목사님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장님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 예배가 있는 날이면 일찍 회사로 나와 사원들 자리마다 찾아가 예배보기를 독려했다.

연례행사처럼 일정하게 이루어지는 예배시간, 직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떻게든 가기 싫어 오전 반차를 쓰거나 말없이 일단 들어가는 사람, 기독교라 예배는 익숙한 사람들까지…….

더군다나 대표님이 온화한 미소를 풍기며 한번 참여하라고 물을 때 ’ 싫어요 ‘라고 거절하지 못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녔고, 대학교 때는 기독교 학교라 채플이 필수였다. 때문에 딱히 심한 거부감은 들지 않았으나 어딘가 생경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 초년생의 첫 회사, 신입사원이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업무 회의가 시작될 줄 알았던 공간이, 그 순간만큼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어 있었다. 사장님의 기도로 시작된 시간은 찬송과 성경 말씀, 목사님의 설교로 이어졌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엄숙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빔 프로젝터를 바라봤다. 나 역시 그 분위기를 따라야 했다. 면접 시 '종교'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데 예배를 보는 회사는 처음이었다. 회의실이라는 공간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으로 가득했는데, 작은 교회로 변신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예배라 내 상식을 흔들어 놓은 '예배'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배가 끝나면 참석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줬다. '빵 먹으려고 참석'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뭐라도 주니 다행이었다. 초등학생 때 교회가 끝나고 나눠주던 초코파이, 과자 등 간식이 떠올랐다.




예배 참석은 '선택'이라기보다 '분위기상 당연한 것'에 가까웠다. 당장 오전에 처리하는 일이 있으면 참석을 안 해도 됐지만 괜히 눈치가 보였다. 금방 끝날 일도 있어 보이는 척하려고 모니터를 바쁘게 두드렸다. 어떤 직원은 신앙심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모으며 기도했고, 또 다른 직원은 책상 밑에서 스마트폰을 슬쩍 확인했다.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과 졸음을 참지 못해 고개가 떨어지는 모습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오늘 말씀 좋으셨죠?"


"네에!"


직원들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많은 사람들 속에 천진난만한 표정의 신입사원들이 앉아있다. 그중엔 나도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다시 대 회의실은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기도가 울려 퍼지던 공간이 아이디어 회의, 성과, 수정을 하는 치열한 목소리가 흐르는 장소로 한순간에 바뀌었다.


회사 예배는 내게 늘 묘한 시간을 남겼다.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시간이기도 했다. 업무와 신앙, 회사와 개인의 경계는 생각보다 쉽게 뒤섞였다.

돌이켜보면, 회사가 원하는 '한마음'은 사실 모두의 진짜 마음을 담아낼 수 없었다. 신앙은 자발적일 때만 의미가 있고, 회사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성을 존중할 때 더 건강해진다. 회사 예배 시간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회사에서 우리가 공유해야 하는 건 신앙일까, 아니면 신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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