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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연락을 받을 때면

by 서이담

“서이담?” 달랑 이름 세자에 물음표만 달랑 보낸 사람. 내게 카톡을 보낼 리가 없는 사람에게 온 뜬금없는 연락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메시지 내역을 보니 이천이십일 년 내가 보낸 카톡이 Y에게 했던 마지막이었다. 뜻밖이었다. 반가움보다는 얘가 왜?라는 의문이 생겼다. 의문은 의심으로 번져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결혼하나? 누가 돌아가셨나? 할 말이 있나? 카톡 읽음 표시 1이 없어질 때까지 온갖 상상을 했다.


먼저 연락을 다 하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사 년 만에 온 메시지엔 반가움과 궁금함이 섞여있었다. 처음엔 내가 맞는지 확인하는 거였고, 후에는 안부를 물었다.


Y와 나는 만날 때면 주로 술을 마셨다. 술메이트라고 해아 할까. 우리의 연락이 뜸했던 것도 Y와 내가 멀어진 것도 술 때문인 것 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친구의 동창으로 연을 잇게 된 그녀와 나는 동네가 매우 가까웠다.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닿는 거리.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 그래서 자주 만났고 술을 마실 때마다 일이나 연애얘기를 했었다. 우리가 술을 먹는지 술이 우리를 먹는지 헷갈릴 만큼. 나는 안주를 한 움큼 욱여넣어도 몇 잔 마시면 머리에 혈이 뭉친 것처럼 발갛게 올라왔다. 집이 가까운 덕에 그녀도 나도 급만남을 많이 했었다.


내가 힘들 때면 한잔해야지 하며 운동복 차림으로 달려와 술잔을 부딪혔다. 나도 그녀도 바빠질 무렵 한쪽에서, 정확히는 내쪽에서 술약속을 거절했다. Y와의 마지막 기억은 이렇다. 술약속을 미루고 미루다 삐져버린 그녀였다.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으니 나도 굳이 먼저 묻지 않았다. 가까이 살았지만 불편해져 버린, 카톡 목록에서 지우고 싶지만 애매해진 그런 관계라고나 할까.




'잘 지내? 뭐 하고 살아?'

'결혼은 했고?'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질문들. 꼬리에 꼬리를 잇는 어떤 말들.

그녀가 궁금한 만큼 나도 그녀가 어떻게 살았나 궁금했다. Y와 내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B라는 친구는 얼마 전 결혼을 했다.


'B 결혼식에는 갔어? 나 거기 갔었는데'

'어 나도 갔어!'


어색했던 공기너머로 공통분모를 찾은 것처럼 우리 둘의 말들에 생기가 돋았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말해야 되나...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면 뭐부터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어떤 일이 있었냐는 물음이 나을지도 모른다.


2021년도 연락이 끊긴 후부터의 이슈들을 떠올렸다. 엄마의 투명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 이사한 집, 사람들의 밑바닥을 보던 날들. 책임질 게 없어 나를 찾아온 암.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연락이 끊긴 이유가 술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Y는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야 기억도 안 나 언제 적 일인데 술 때문에 삐지고 자시고 그래. 나 술 안 마셔'


사 년 동안 겪은 산전수전 공중전을 풀어내고 나서야 그녀가 내게 말했다.


'사실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용기가 안 났던 거 같아. 이제 연락해서 미안해'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연민을 느꼈나. 아니면 내가 불쌍한가 동정심인가. 삐딱한 시선으로 Y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Y는 돌싱이었고, Y에게는 열세 살 난 딸이 있다는 것, 남편과는 삼 년 정도 살았는데 아는 지인과 눈이 맞았다고. 도저히 살 수 없어 남이 됐다는 사정을 말했다. 그러니까 Y는 나와 처음 알게 된 날 이미 돌싱이었다.


'돌싱이 뭐 흠이야. 너 엄청 동안이야 애기도 예쁘겠다'

내가 말했다.


그녀의 비밀을 그러니까 칠 년이 지난 지금 말해줘서. 못다 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나서 선뜻 먼저 연락해 내어 준 마음이 고맙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이야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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