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쓰기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굴러간다

잃어버렸던 촉을 다시 믿어보기로 한다

by 서이담

글은 대체 어떻게 해야 잘 쓰는 거야? 에디터 일을 하고 나름 짬밥이 생겼을 때 지인 몇 명이 내게 물었다.

질문의 요지를 파헤쳐 보면 그들은 글 잘 쓰는 스킬, 방법론 그러니까 일종의 팁을 얻고 싶어 했다.


대답은 나도 모른다였다. 중요한 건 매일 쓰다 보면 얻는 게 있을 거라는 매우 심플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 당시의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몰랐기 때문에, 두 번째는 나는 얼마만큼 글쓰기에 진심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백 기간도 없이 점프 이직한 회사에서는 나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지인 추천으로 가게 된 회사라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나 실상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빨간펜으로 지적되고, 피드백 수정이 수십 번 오고 갔다. 어떤 날은 왜 고쳐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고쳤고, 또 다른 날은 윗분들의 수정 지시가 있어 고쳤다. 차라리 하루 종일 글만 들여다보고 수정하는 일만 했으면 좀 더 치열했을 수도 있었으려나. 이벤트 페이지 만들기, 당첨 전화, 우체국 가기, 출연자 섭외 등 여러 가지 일을 다중으로 했기에 정신이 없었다.


글을 '일'로 시작하며 글이 나를 시험대에 올렸다. 반려된 문장들을 다시 한번 읽었다. 수정사항이라는 글자가 무섭게 다가왔다. 마감은 늘 촉박했고, 쫓기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문장이 얇게 변했다.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문장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 글 잘 쓰는 사람 맞나?”


어린 날의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그땐 잘 쓰는지 못 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쓰면 되었고, 쓰는 동안 "내가 나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감각이 충만했다. 초등학생 때 시청 광장에서 하던 야외 백일장을 나간 적이 있었다. 공책에 글을 쓰고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귓속으로 들어온 문장들은 다시 이어질 글자들을 생각해 낸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쓰던 글을 곱씹었다.


다음 문장이 생각이 안 나거나 마무리가 안 될 때 나는 계속해서 내가 쓴 글을 처음부터 되돌아봤다. 한 음절씩 따라 읽을 때도 있었고, 마음속으로 읊조리듯 훑어볼 때도 있었다. 첫 줄을 쓰기 전부터 이미 다음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가슴이 먼저 반짝이고 표정에 활기가 돋았다. 스스로 뿌듯한 마음에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눈으로 담았다. 원고지는 나에게 작은 세계였으니, 칸 하나하나를 천천히 채워가는 모습이 꼭 휴대폰 배터리가 충전되는 모습과 닮았다.


나 쪼금 잘 쓰는데? 정말 근거 없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었다. 선생님이나 친구가 너 글 잘 쓴다고 칭찬해서 생긴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종류의 믿음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백일장에 나가는 족족 상을 탔다. 열 번 중에 6번 7번은 탔으니 꽤 승률이 높은 편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재능이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근거 없는 확신에 대한 증명'처럼 느껴졌다.


상황이 엉망인 날에도 '오늘은 뭔가 될 것 같은데?'라는 촉이 발동하는 날이 있었고, 그 촉이 신기할 정도로 맞았으니까. 자신감이란 게 노력이나 결과의 산물만은 아니란 걸 막연히 깨달았다. 가끔은 이유 없이 나를 믿는 순간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 무렵의 나는 글을 쓰는 일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전에는 글을 잘 쓰는 순간이 나를 움직였는데, 이제는 글을 계속 쓰는 나가 꿈틀댄다. 성인이 되어 글을 쓰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국 나와는 많이 달랐던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진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숨통이 조금 트였다. 남의 기준이나 검열이 붙기 전의 나는 ’글이 되는 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처음 글쓰기를 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반복해서 쓰고, 고치고 스스로 칭찬하고 기뻐했던 시간들. 모두 진심에서 묻어 나왔으니. 근거 없는 자신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작은 불씨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확신이 없을 때 더 씩씩하게 글을 쓴다. 남들이 뭐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좋다‘고 말해주는 마음으로. 그렇게 쓰다 보면 나에 대한, 나를 받쳐주는 단단한 믿음이 생길 것이기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다림의 계절, 문장 하나를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