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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감이 큰 사람일수록 더 쉽게 다친다.

by 부아c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한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공감 능력이 클수록 혼자 다 끌어안게 되고,

남의 감정에 쉽게 지치다 보니 나부터 무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감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만날 사람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공감 능력을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처에 귀 기울이고, 함께 울어주는 게 다정한 일이라 여긴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 높다는 건 나 자신이 더 많은 짐을 떠안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감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슬픔, 불안, 분노가 내게도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높을수록 만날 사람을 잘 선택해야 한다.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고 다 받아주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이 먼저 지쳐버린다.

진짜 공감은 무한히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낼 선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밤새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아질 때까지 옆에 있어주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이 힘들 때는 누구에게도 쉽게 기대지 못했다.
그렇게 점점 무너지고서야 알았다.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남의 고통에는 예민하지만, 자신의 고통에는 둔감하다는 걸.


공감은 능력이 아니라 에너지다.
아무리 좋은 마음이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고갈된다.
남의 감정에 몰입할수록 내 마음의 공간이 좁아지고, 어느 순간 내 감정을 다스릴 힘조차 사라진다.
공감은 좋은 능력이라 생각했는데,

그 다정함이 때로는 나를 소진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은 만날 사람을 조심히 선택해야 한다.
아무에게나 마음을 내어주면 결국 내가 다 감당해야 하니까.
나를 지켜주는 건 공감의 크기가 아니라, 경계의 선명함이다.


공감은 분명 소중한 능력이지만, 동시에 자기 보호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먼저 아끼는 방법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오래도록 따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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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내용은

제 신간 <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운 시대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외로움은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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