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마르세유에서의 인연과 도시의 진짜 얼굴
호캉스가 뭐 별거 있나? 집이 아닌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면 그게 호캉스지. 8시쯤 일어났는데 10시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테라스 경치도 즐기며, OTT를 보다가 11시에 푸드투어 있어서 느지막이 챙겨서 항구 쪽으로 나갔다. 나가는데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몸이 약간 밀릴 정도로 셌다
투어객 중 혼자 온 아시아계 남자가 있어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게 됐다. 얘기를 나눠보니 미국에서 온 인도인이었고, 이름은 스와란이다. 이번엔 반정도 알아들은 것 같은데 그나마 푸드투어라 다행이다. 중간 쉬는 시간에 들었는데 가이드는 라호쉘이라는 프랑스 서부지역에서 왔다고 한다. 2007년에 친구가 거기 있어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여주자 몇 살이냐 물어본다. 40대라고 하자 놀란다. 뭐 어려 보인단 얘기를 하겠거니 하고 노~노~ 노~ 했지만 30대 같아 보였다고 하고 다른 참가자들도 칭찬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유럽인에 비해 젊을 땐 어려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노인이 되면 한국인이 더 나이 들어 보인다.
두 가지 음식 먹고 간식거리 시식하는데 크림이 맛있어서 칼리송과 세트로 충동구매했다. 칼리송은 처음 만든 사람이 맨날 화가 나 있는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입술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먹고 마들렌을 먹는데 어제와는 또 다르다. 맛만으론 오늘게 더 좋은데 마들렌 본연의 맛으론 엑상프로방스 승! 디저트까지 깨알같이 먹고 종료됐다. 혼자 다니면 많은걸 못 먹는 게 아쉬운데 주문도 알아서 해주니 먹는 거에 비해 투어비가 비쌌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었다.
투어가 끝나고 스와란과 숙소 방향이 같아 가다가 카페에 들렀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생긴 게 그냥 에스프레소 도피오이다. 마셔보니 역시나 에스프레소다. 스와란이 먼저 저녁 같이 먹자며 청해줘서 연락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는데 프로필에 둘 다 엔지니어, 스포츠라고 써둬서 서로 깜짝 놀랐다.
오후 프리워킹투어는 스와란도 합류했다. 오늘 가이드는 여자친구 따라 마르세유로 온 아르헨티나인이다. 미팅포인트는 항구였는데 예전의 지도를 보여주며 원래는 바다였던 지점에 우리가 서있다고 한다. 나도 들었지만 스와란도 들었고 가이드가 아마 많이들 들어봤을 거라는 치안 얘기. 마르세유가 치안이 안 좋다지만 EU에서 선정한 치안이 제일 안 좋은 세 도시는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라고 한다. 그러니 문제 될 것 없다고 설명해 줬다.
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해 원래 항구터도 보여줬는데 배 모형을 가져다 놔서 어떤 곳이 바다인지 알아보기 좋았다. 여긴 내일 다시 와봐야지. 2차 대전 피해를 받은 곳을 보면 우리나라가 떠오른다. 특이하거나 비싼 건물 빼고 2천 개의 건물을 날려버렸단다. 중간에 프랑스 내에서는 미켈란젤로만큼 위대한 건축가 얘기를 하는데 이탈리아 참가자 눈치 본다. 그라피티가 한창 중인 골목을 들어섰는데 재밌는 건 이 동네라고 그라피티가 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촬영 중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예전에 제일 쌌었던 동네도 보여주는데 한쪽에서 약하고 있던 그런 동네였다고. 가이드가 처음 마르세유 왔을 때 돈 없어서 그 동네 살았는데 라틴아메리카 출신인 그에겐 오히려 안전해 보였다고~ 마르세유가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되기도 하고, 부자들이 역사적 장소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 쓰레기 정비, 가로등, cctv설치하며 안전한 동네가 되어 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비누샵에서 좋은 올리브 비누를 찾으려면 세 가지만 기억하세요. 올리브색에 가까울 것, 큐브모양일 것, 인공적인 향이 안 날 것. 이 동네도 수돗물을 마신단다. 알프스가 수원이라 공짜 산펠레그리노라고~ 내가 공짜 삼다수라고 하는 것처럼!
마조르(Major)라고도 불리는 마르세유대성당은 무료입장인데 딱 문 닫기 직전에 맞춰 입장해 내부구경까지 할 수 있었다. 투어를 마무리하며 시작할 때 얘기했던 치안얘기를 다시 꺼냈다. 우리는 마르세유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살아남았다. 이렇게 안전하다며 농담을 했다. 이번 투어는 유명 관광명소보다는 현지인 아니면 알기 어려운 진짜 마르세유 내부를 경험한 거 같아 좋았다.
투어가 끝나고 스와란과 홍합찜이랑 깔라마리에 맥주 한잔씩 하고 2차로 펍에 가서 난 모나코 한 잔. 스와란이 약간 소주 같다며 추천해 줬지만 과일소주만 마셔봤나 보다. 인디아나주에서 살고 있고 태어난 곳은 인도지만 인도 억양이 없다고 하자 인도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확 달라진다고 한다. 내가 회사 사람들과 얘기할 때랑 제주도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랑 확 달라지듯이 말이다.
이렇게 여행서 외국인과 동행한 것도 처음이고, 오랫동안 얘기해 본 것도 처음! 이게 되는 게 신기하다. 물론 내 영어가 짧아서 스와란이 많이 배려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