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건물을 조사해 보니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지연이 들어간 건물의 소유주는 서광 그룹이었고, 건물 지하에는 회원제로 운영하는 호스트바가 있었다. 이지연은 행여 호스트바를 출입하는 모습을 언론에라도 들킬까 봐 피부과를 통해 호스트바가 있는 아래로 내려갔으리라.
잔뜩 술에 취한 여자와 멀끔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성 실장이 붉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옷부터 준비해야겠어.”
며칠 후. 성 실장과 영종은 막 피부과 건물로 들어간 이지연을 따라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화려한 화이트 무스탕을 걸친 성 실장은 고객,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영종은 호스트였다. 옷에 알코올을 적셔 술 냄새를 심하게 풍긴 둘은 문 앞을 지키고 선 가드가 막 교대한 때를 노려 마치 잠깐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는 사람들인 척 연기했다. 낯선 두 얼굴을 본 가드는 잠깐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남녀가 엉겨 붙는 그 꼴은 익숙했는지 곧 쉽게 문을 열어주었다.
막 잠입에 성공한 성 실장이 영종의 팔에 더욱 바짝 달라붙어 말했다.
“봐. 너는 누가 봐도 딱 여기서 일하는 애 얼굴이라니까?”
당신이야말로 누가 봐도 여기 손님 같아요. 영종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꾹 삼켰다.
흩어진 둘은 각 방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는 인물들을 살피며 이지연을 찾았다. 통로 구석까지 간 영종은 그곳에서 아래로 난 좁은 계단을 하나 발견했다. 이상했다. 입수한 도면으로는 분명 지하 1층까지 밖에 없는 건물인데. 그 수상한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자 전기실이라고 크게 써 붙인 문이 하나 나타났다. 영종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고리를 잡아 열어보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 흔한 키패드도 없는 것으로 보아 열쇠로 잠겨있는 모양이었다.
“쫑! 쫑!”
그때 계단 위에서 성 실장이 영종을 은밀하게 불렀다. 영종이 위로 올라오자 성 실장이 그를 한쪽 구석에 있는 방 앞으로 데리고 갔다. 씩 웃은 성 실장이 그 방의 문에 난 창을 턱으로 가리켰다. 영종이 작은 창 너머로 그 안을 훔쳐보았다.
그 안엔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아마도 준으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의 발가락을 빨고 있었고, 아마도 동호일 그 남자는 여자 앞에서 민망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피트겠지. 엉덩이를 깐 그 남자는 여자에게 기꺼이 회초리를 맞고 있었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여자는 이지연이었다.
창 너머 그 기이한 광경을 스마트폰에 담던 영종은 이지연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외양은 이지연이 분명했지만, 어쩐지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답답하고 커다란 안경을 벗어서 나는 차이는 아니었다. 이지연의 죽은 눈깔에 생기가 돌았다. 영종은 그 눈이 섬뜩했다.
차로 돌아온 성 실장은 영종이 찍은 동영상과 사진부터 확인했다. 그 증거를 자신의 노트북으로 백업하는, 입꼬리를 한껏 올린 그녀의 표정을 보며 영종은 직감했다. 아마 이 증거를 박경민이 볼 일은 없으리라. 왜? 이지연이 훨씬 더 돈이 많으니까.
“회사엔 찾아오지 마시라고 했을 텐데요.”
회사 1층에 있는 사내 카페에서 만난 이지연이 마주 앉은 둘을 보며 말했다. 분명 둘을 질책하는 내용이었지만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 기이한 말투였다.
“죄송해요. 그게 조금, 중요한 증거를 잡아서.”
성 실장이 능청을 떨며 이지연에게 태블릿을 건넸다. 드디어 남편의 내연녀를 볼 수 있을까? 그렇게 예상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겠지만 나오는 영상은 자신의 은밀한 취미 생활이라니. 그녀가 얼마나 놀랐을까? 영종은 이지연의 표정이 과연 어떻게 바뀔까 주시했지만 의외였을 그 영상이 재생된 후에도 그녀의 표정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여전히 그 죽은 눈으로 태블릿을 주시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성 실장이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듯 서둘러 말했다.
“나 깜짝 놀랐어요. 성실하다고 소문난 서광 그룹 후계자가 이렇게 재밌게 놀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어 과장된 몸짓으로 주변을 둘러본 성 실장이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나도 여자로서 이해해요. 젊고 잘생긴 애들이랑 노는 거 나도 좋지. 없어서 못 만나지. 그런데 세상이 이해를 못 하니까. 그게 애석하지.”
이지연이 그 죽은 눈으로 성 실장과 눈을 마주쳤다. 영종은 옆에서 두 여자의 눈을 번갈아 보았다. 한쪽은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눈. 한쪽은 지나치게 바라는 게 있는 눈이었다. 곧 명함을 꺼낸 성 실장이 그 위에 숫자를 하나 적었다.
1,000,000,000.
일, 십, 백, 천…. 영이 아홉 개. 십억이다.
“일주일 드릴게요. 서로 불편하게 엉뚱한 생각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 성 실장이 탁자 위에 자신의 명함을 올려놓았다.
“쫑. 뭐 해?”
성 실장이 여전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던 영종을 불렀다. 성 실장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이지연이 영종과 눈을 마주쳤다. 순간 영종은 어쩐지 그녀가 마네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꺼림칙한 기분이 든 영종은 성 실장의 뒤를 따라 서둘러 카페를 빠져나왔다.
차로 돌아온 영종이 성 실장에게 말했다.
“너무 세게 부르신 거 아니에요?”
“저 여자가 지금껏 호스트바에 뿌린 돈만 해도 그 정도는 될걸?”
깔깔 웃던 성 실장이 영종을 보며 덧붙였다.
“쫑. 너 방금 일억 벌었다?”
영종이 말을 잇지 못하자 성 실장이 씩 웃었다.
“왜? 감동이야?”
“그럼 저도….”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낸 영종이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자 금방 성 실장에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성 실장이 영종이 보낸 메시지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자 커피 쿠폰이 있는 페이지가 나왔다. 성 실장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너 양아치니? 일억을 커피 한 잔으로 퉁 쳐?”
“에이, 하루에 한 잔씩이죠.”
영종의 말에 둘은 한바탕 웃었다. 둘 다 큰 몫을 잡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