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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픽 오늘의 한 구절: 대화가 중요해

by 문혜정 maya




그에 대한 확신이 왜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람이 어떤지를 몰라요.
나와 같은 마음인지, 나와 다르게 우리 관계에 확신이 있는지 같은 거요.
그 사람에게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역시 나에게 자기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은 것 같기도 하네요.

<타로카드 읽는 카페, 조용한 시간 중에서>



여러분은 연인이나 배우자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신가요?

보통은 서로 알게 되기 시작하는 초기에 많고, 점점 아는 것이 많아질 수록 말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그, 또는 그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자체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종종 오래된 연인 사이를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눈빛만 봐도 통하는 짙은 연인들이 헤어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더이상 대화를 하지 않아서, 서로 할 말이 없어서일 때도 많아요.

이미 다 아니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뭐라고 말할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아니까 굳이 안 하게 되는 거죠. 특히 걱정을 끼칠까 봐, 잔소리의 탈을 쓴 조언과 위로일까봐.

그야 말로 ‘다, 알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런 회피의 순간이 관계의 종말로 들어가는 첫번째 단계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기 어렵죠. 왜냐면 그 말을 굳이 하지 않는 내 마음도 ‘다 알 것 같아서’ 안 하는 거거든요.

그러나 어디 마음이 그렇던가요?

내 마음도 하루에 수십번씩 오락 가락 하는데, 남의 마음은 오죽하겠으며 그 둘이 하나로 모은 마음은 또 얼마나 변덕스럽겠어요. 다 안다, 다 알겠지, 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몇번이나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 새로 뭉쳐지고 그 안에서 전과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내곤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소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관계를 좋아해요.

오늘 점심은 뭘 먹었어? 왜 그걸 먹었어? 누구랑 먹었어? 맛있었어? 같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가벼운 대화를 매일 건네는것도 좋아하고요. 늘 먹는 점심, 사흘 걸러 로테이션 되는 메뉴, 매일 비슷한 점심 멤버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까지 매일 똑같을 수는 없거든요.

아, 가끔은 ‘똑같지 뭐’라는 답이 돌아올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왜 매일 똑같은지, 똑같은 일상이 즐거운지, 견디기 어려운지 같은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서 이어나가요. 그러다 보면 미처 말하지 못했던 일상의 순간이 떠올라 ‘맞아 맞아, 나 아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라고 하면서 새로운 주제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왜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그렇게 울적했는지 원인을 발견하기도 해요. 처음부터 깊은 대화, 솔직한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것보다는 상대의 작은 일상을 듣고, 자신의 것을 나누고,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요.

글도 많이 써 볼 수록 쓸 것이 늘어나고 실력이 늘어난다는데, 대화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는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 되면, 그 후에는 우리가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과가 되거든요.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해야 잠에 들 수 있는 것처럼. 그나 그녀와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무언가 어색하고 할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고요. 그러면, 그 후부터는 조금 더 편해집니다. 나 스스로도 어떻게 대화를 하고, 내 마음을 표현하면 더 좋을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의 다음 단계는 언제든 뜸들이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 아닐까요? 연인의 표현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는 건 이런 기분이어서구나, 하는 걸 한번에 알아차리게 되는 게 바로 그런 사이인 거죠.



연인과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 중에 저는 ‘말을 하지 그랬어.’가 제일 슬픈 말 같아요. 왜 서로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기회가 없었을까. 왜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더 빨리 말 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미련도 함께 남기는 말이니까요.

서로의 마음을 쉽게 꺼낼 수 있는 사이가 아니게 되면, 노력을 해도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되는 때가 오면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되고, 그 관계는 결국 끝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기 전에, 혹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의 마지막 대사가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가 아니도록 사소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 보세요.




아, 그리고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할 상대가 꼭 타인만은 아닌 거, 아시죠?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중요해요.

대화를 통해 상대가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민은 있는지, 나와 가치관은 비슷한지, 필요한 건 없는지 알아볼 수 있다면 나와의 대화는 타인과의 대화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나에 대해 잘, 자세히 알아야만, 나와의 관계부터 공고히 쌓아야만 타인과의 관계도 쌓을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없는 관계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나 마찬가지일테니까요.




오늘의 이야기가 실렸던 ‘조용한 시간’ 챕터의 카드는 컵의 여왕(Queen of Cups)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만큼 자신을 잃고 남에게 끌려다닐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이 카드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공감능력도 크고,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해 주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경우죠











반면에 원작에서 사용했던 카드는 이것이었습니다. 막대기의 여왕(Queen of Batons)

지고지순하고 온순하며 일탈을 모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자, 강한 책임감과 생활력의 현모양처형의 캐릭터를 설명할 때 많이 사용하는 카드에요.

일탈을 모르고 자신의 고집대로 간다는 의미 때문에 사용했던 것 같아요. 애정보다는 책임감으로 관계를 쭉 이어나가는 느낌을 설명하려고요.

비슷하게 여왕카드지만 컵의 여왕이 좀 더 끌려다니는 느낌이 큽니다.




아마 저는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하려는 느낌을 위해 이 카드를 사용했다면, 편집자님은 그것 보다는 내 주장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너무 크게 공감하여 끌려다니는 느낌을 좀 더 강조하고 싶으셨나봐요.

어떤 사람의 입장으로 보느냐에 따라 끌려가는 사람, 막무가내로 끌어오는 사람 모두 표현할 수 있겠네요.

대화란 건 강의나 지시와는 다르게 상호교류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그러면서 느끼기도 하고......그 중간의 역할들을 모두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남편이 퇴근할 때 제가 해줄 오늘 저의 사소한 이야기는...... 노트북이 고장난 것 같아, 입니다. 이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전원이 안 들어오네요. ㅠ_ㅠ

그래도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노트북은 먹통이었지만 당신이 선물해준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어서 글을 쓸 수 있었어. 고마워, 라고 해줘야겠어요.

(하나 사줄래? 까지 붙일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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