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존재여도,
자신을 원하는 사람이 없어도,
언제 다시 누군가와 함께하게 될지 몰라도,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 홀연히 떠나도,
봉구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런 존재와 함께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졌다.
<타로카드 읽는 카페, 구원자가 된다는 것 중에서>
추석 연휴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네요.
정말 오랜만의 아주 긴 공휴일이었고, 저는 아무 부담없이 아주 마음 가볍게 쉬었던 날이었어요.
오늘 저의 한 구절은 봉구를 만나 조건 없는 애정을 주는 존재의 단단함에 대해 각성하는 세련의 마음이에요.
살다보면 '진짜 강함'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보게 될 때가 있어요.
'저 사람은 진짜 강인한 사람이다', 싶었던 사람이 어느 한 순간 무너지는 걸 보기도 하고 비리비리 하고 나약해 보이던 누군가가 묵묵히 자신의 고통을 견뎌내고 결국을 이겨내는 걸 보기도 하잖아요.
진짜 강한 사람, 센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대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
한 대 맞으면 두대 때려줄 수 있는 사람?
저는 우리와 똑같이 맞으면 아파하지만 금방 회복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 같아요.
살면서 상처가 없을 수 있나요. 시련이 없을 수가 있나요.
아침에 눈을 뜨는 것부터가 시련인 걸요. 더 자고 싶은데 일어나야 하고, 양치를 해야 하고, 닿기도 싫은 타인과 부둥부둥 한 차에 실려 일하러 가야 하는 그 평범함 삶조차 어찌보면 시련이죠. 오늘 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다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운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24시간은 모두 시련일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늘 웃고 있죠.
겉으로만 생글거리는 그런 웃음 말고요. 자신의 고통을 숨기고자,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고자 즐거운 척, 착한 척 하는 그런 웃음은 우리 다 알 수 있잖아요.
자신을 거쳐가는 수많은 바람들에 흔들리지만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미소를 가진 사람들.
저렇게 되고 싶다, 저런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
그들이라고 인생이 행운으로 가득차서 그렇게 평온할리 없어요. 그런데도 그들이 '어, 난 괜찮아. 살만해.'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런 '회복 탄력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더 나아가 '나 같은 게 그렇지'하는 자기비하가 되기도 하는 그 마음이요.
당연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어야 해요. 자기 애정이 없는 사람은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그 고전적이고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말은 진짜에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때,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존재가 자기 자신인데 그 첫번째 존재이자 내가 표현하는 사랑의 주체인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뿌리가 없는 사랑을 하게 되는 걸테니까요.
모든 것은 나, 내 안의 나로부터 뻗어나갑니다. 세상이 살아 숨쉬는 이유는 내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고, 어느 날 세상이 완전히 문을 닫는다면 그건 내가 사라지기 때문일 거에요. 개인의 삶으로 봤을 때 세상의 존재와 상실은 모두 그것을 인지하는 나 자신에 달려있고, 내가 인지하는 세상의 크기나 범위, 수준도 나 자신의 경계에서 더 넘어갈 수 없어요.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고도 무한하며 완벽한 것은 나 자신일 수 밖에 없죠. 그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이 타인이든, 신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을 사랑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런데 가끔은 그 사랑이 너무 과해서, 혹은 너무 부족해서 자기 애정이 아닌 자기 연민으로 뒤덮히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문제의 원인과 해결은 모두 다 그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 뿐이에요.
세상 모든 문제가 '나 때문에',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다 남 때문에', '다 니들이 잘못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일어났고,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운이 없으면 바로잡을 기회 없이 지나가기도 해요.
그 안에서 나는 내 역할을 다 했나, 그것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아니라면 다음에는 조금 더 노력하는 거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 데도 잘못된 거라면? 그것 역시 다음 기회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해 보는 거죠.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다시 시작해볼 순 있어요.
회복 하는 거에요. 다시 나로.
어떤 사람들은 그 계기가 우연히 만난 사람(귀인이라고 할 때도 있죠, 그런 사람들을)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시기 읽은 책, 들었던 노래, 보았던 그림이 될 수도 있겠고요, 우리 '타로카드 읽는 카페'의 주인공 세련에게는 유기견인 '봉구'가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이 챕터에서 사용한 카드는 Strength(힘) 카드였어요.
설명을 보면...
'주어진 상황을 잘 다워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스스로의 지혜로 헤쳐나갈 수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원작에서도 같은 카드를 사용했어요.
주어진 상황 자체는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사자처럼 호락호락 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 사자의 아가리를 굳게 붙잡고 있는 나, 내 스스로의 통제와 지혜로 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수도, 사자에게 먹힐 수도 있다는 것이겠죠.
가끔은 내게도 혼자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 상황을 일깨워줄, 한 발짝 밖으로 내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것조차 없는 불운한 삶을 탓하며 다시 자기연민의 세계로 끝도 없이 빨려들어가기도 하고요.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귀인이었던, 기회였던 그것이 나에게 와도 내가 그것을 기회로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잘 생각해 봐야 해요.
어제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길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지나칠 수도 있었던 유기견이 오늘 나에게 다가와 사랑을 가르쳐 주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알아 본 '나'의 마음 때문이거든요.
결국 모든 고난 탈출의 열쇠는 여기, 내 마음에 있는 것 같아요.
좁은 내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건 내가 넓어지는 것 뿐이니까요.
아무리 찾아도 그럴만한 계기가 없다면?
'타로카드 읽는 카페'를 그런 존재로 받아들어보시면 어때요? :)
아! 추석 연휴가 지나기 전에 함께 나누고 싶은 좋은 소식이 있어요!
연휴 직전에 소설 '타로카드 읽는 카페'를 출판하고 싶다는 해외 출판사의 오퍼가 들어왔습니다. 스페인이었고요, 저는 당연히 너무 흔쾌히 계약에 동의 했습니다.
일년에서 일년반 정도면 스페인어로 인쇄된 '타로카드 읽는 카페'를 읽을 수 있을 거에요.
무, 물론 저 말고...스페인어를 잘 하는 분들이..... ㅋㅋㅋ
제 소설을 좋아해 주시고 이 글까지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라면 같이 축하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공유해 봐요!
남은 연휴도 잘 마무리 하시고, 석달도 남지 않은 2025년도 악착같이 행복하게 보내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