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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픽 오늘의 한 구절: 나는 어디로 몰리는가.

by 문혜정 maya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며 살아간다.
가진 것을 돌아보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는 게
삶의 의욕을 불태우기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면적이 작아질수록
그곳을 향하는 에너지는 더욱 응축될 테니까.

<타로카드 읽는 카페, 그릇과 방향 중에서>





사람마다 각자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기심리학에서 보면 '추동(Drive)'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요, 이것이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는 거에요.

이미 '동기'심리학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오시죠?

인간의 행동을 일으키고 결정하는 동기(motivation)에 해당하는 요인을 연구하는 심리학입니다.

이미 일어난 인간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가를 보는 게 아니라 행동의 앞단에서 행동을 일으키는 이유를 살펴보는 거죠. '쟤는 대체 왜 저러는 거야?'에서 '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거랄까요?

우리도 종종 우리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나서 '내가 '왜'그랬지?'를 궁금해 하기도 하잖아요.

보통은 그 행동을 하는 것이 내 안에 있는 어떤 불편한 무언가, 마음이랄까 기분이랄까....그런 걸 줄여주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아요.

강박적인 행동도 그렇잖아요, 지금 당장 손을 씻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하는 거죠.

보통은 이렇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것이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요, 무언가를 원해서 행동하는 것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꼭 가지고 싶은 게 있다

→ 내가 그것을 가지지 못했다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비참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

→ (그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기 위해) 그것을 가길 수 있는 행동을 한다


시험에 100점 맞기를 욕망하는 학생이 있다고 예를 들어 볼까요?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스스로도 너무 뿌듯하고, 부모님이 칭찬도 하고, 친구들이 부러워 하니까 열심히 시험 공부를 한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동기심리학적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100점을 맞지 않으면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고, 부모님이 속상해 하고, 친구들이 우습게 보는 게 싫어서 그런 추동을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설명할 수 있어요.

너무 부정적인 관점 같죠?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적인 감정이 불편감이라니.

물론 이렇게만 보는 건 초기의 동기심리학적 관점이고 긍정적인 감정도 인간을 움직인다고 보기는 해요. 좀 더 깊은 의미로, 그리고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이 더 강력하게 역할을 할 때도 있죠.

그러나 인간의 행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생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상황에 더 예민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명확이 이해됩니다.

본질적으로 보면 우리는 다 살기 위해 그런 행동들을 해 왔던 거에요. 그게 맞든, 틀리든 내 판단에 의해.

그리고 나에게 나쁜 것을 피하는 게 내 생존에 훨씬 유리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강렬한 불길 속에서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도록 채찍질 했던 건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던 거고요.

질투, 시기, 복수심, 불안감, 좌절, 인정욕구, 애정결핍까지도요.




시작점에 있었던 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내 삶에서 절대적으로 몰아내야 할 것들'이라고 꼽을 수 있는 감정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해요.

우리의 무거운 엉덩이를 찰싹 때려서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얻어맞을 때야 기분도 나쁘고 귀찮고 짜증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후엔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마음 속 프로세스가 역전될 때가 있어요.

결국은 가까운 미래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당장의 힘듦을 견디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건데, 그걸 까먹고 괴로움만 남은 행동을 계속할 때 말이에요. 지금도 행복하지 않고, 앞으로도 행복해지지 않을텐데도 그것을 멈추지 못할 때가 분명히 있어요.

저는 그게 욕망에 의도가 잡아먹인 때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 감정이 갖는 에너지는 분명히 강력하지만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해 발동시킨 욕망이 이 모든 행동이 있도록 한 가장 앞서는 의도를 잊은 채, 혹은 무시한 채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게 의미가 있는 걸까요?




미래의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건데 1등을 못해서, 대학에 떨어져서 '죽는 게 낫다'라고 생각이 들면 이 행동이 있도록 한 '미래의 나' 자체를 없애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해지기 위해 연애를 하는 건데 저 남자 때문에 불행하지만 헤어져서는 살 수 없으니 그냥 계속 만나겠다라고 하는 것 또한 나의 행복을 전제로 한 '연애의 목적'이 완전히 전도되는 거고요.

살다보면 열심히 달리지만 '내가 왜 달리기 시작했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일단 이것까지만 하고, 일단 이것까지만 이루어 놓고 그 다음에 생각하자. 왜냐면, 이걸 이룰 시간도 부족하니까!'하면서요.

그러면서 그런 얘기에는 또 공감을 하죠.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쉽게 얘기합니다.

"방향을 잃었다", 고.



그런데 저는 이 '인생의 방향을 잃었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걸 어떻게 잃고, 어떻게 잊죠?

인생의 모든 방향은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에 닿아 있어야 하지 않나요?

산다는 것이 추구해야 할 바는 '나의 안정적이고 평온하며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행복'입니다. 핵심은 나, 그리고 행복이에요.

저는 한번씩 생각을 해봐요.

내가 지금 행복한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행복한가?

내가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나?

행복은 즉각적일 수도 있지만, 보통 깊이 있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급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흥분과 즐거움을 최대치로 채워주는 마약이나 섹스 같은 것을 행복과 동일시 하지 않는 거죠.

내 삶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지속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긍정할 수 없으므로.

또 다른 한편으로 내가 지금 감내해야 하는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고통이 미래의 나에게 충분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나 지표 역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0년동안 정말 아무도 내 곁에 없고 매일매일 울면서 잠들고 우울증 약을 밥처럼 먹으면서 정말 하기 싫은 일을 미친듯이 하면 1000억대 자산가가 될 수 있다고 쳐 봅시다. 아주 솔깃하잖아요.

10년.

10대에서 40대 정도까지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70대나 80대가 되면 또 달라지겠지만요.

그러나 그 미칠듯한 10년이 나의 향후 50년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천억을 가졌으나 내 마음이 10년동안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받는다면, 그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10년에 나의 나머지 생이 모두 저당잡힌 채 천억의 통장잔고만 남는다면, 그래도 그게 그렇게 가치있는 일일까요?

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내 행복의 기준과 지표를 한번씩 확인해 보는 편이에요. 저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내내 비슷한 정도로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요.

무언가를 한번에 이루어내는 강력한 추동은 없을지라도, 털털거리는 꼬마 자동차를 타고 결국은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전 괜찮을 것 같아요. 거기까지 가는 동안 재미있는 구경도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또 즐거운 경험을 했다면요.






이 챕터에 나온 카드는 일곱개의 컵(Cup of Seven)입니다.

눈앞에 늘어건 여러 보물들을 손에 넣고 싶어 과욕을 부린다. 과유불급, 과욕은 화를 부른다, 라고 해석하고 있네요.






원작에서 사용한 카드는 여왕(The Empress)카드 였습니다.

저는 컵 카드가 보여주는 감정 보다는 여왕이 보여주는 '욕심'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여왕 카드는 가진것도 많고, 재주도 많지만 자신이 가진 것보다 늘 더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과유불급보다는 안분지족에 더 가까우려나요...?




저 역시 부정적인 감정들에 의해서 큰 에너지를 가지고 많은 일들을 해치웠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들이 가진 힘을 너무나 잘 알죠.

그러나 결국 내가 나를 어디론가로 몰아간다는 건, 어디론가로 향하고 싶어서인 거니까, 그 '어디'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몰려지기만 하는 건 인간답지 않잖아요.





이번 주 글에서 또 행복한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설 '타로카드 읽는 카페'가 러시아에서도 출간 오퍼를 받았거든요.

스페인을 시작으로 이탈리아와 러시아까지, 이렇게 빠른 시일에 유럽의 여러나라들에서 출간 오퍼가 들어오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 보통 해외 출간 제안은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책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전 세계의 독자들 중 가장 먼저 알아봐 주신 눈이 높은 분들이에요!

너무 감사해요. 계속해서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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