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은 친구도 많겠지.
거리가 가깝든 멀든
‘진주? 진주 잘 알지!’라든가
‘진주? 그렇게 친하진 않은데
좋은 녀석이야’라고 말해줄 사람들이
언제나 주변에 가득한 그런 사람.
나같은 인생은 만나기 어려운 그런 사람.
<타로카드 읽는 카페, 데고, 끌리고, 모르고, 그래도 시작하고 중에서>
어느날 그런 걸 느꼈어요.
'어? 저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내가 아는 누구랑 닮았다. 얼굴도 비슷한 거 같고, 목소리나 성격도 꽤 비슷해' 이런 생각을 했던 날. 아마도 서른이 넘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만나는 새로운 인물들이 이전에 만나고 겪었던 인물들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은 신기하게도 성격 뿐 아니라 외모까지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관상이라는 게 생긴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면 인사만 나눠봐도 이 사람은 나랑 잘 맞겠다던가,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라던가 하는 감이 금방 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상상을 해 본 적도 있어요.
신이 이 세상에 70억명의 사람들을 만들 때 각각의 인간을 다 제 개성을 가진 인물로 창조했으나 그냥 무턱대로 조금 조금씩 다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컴퓨터의 폴더처럼 대표적인 특성을 가진 인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크게 나누어 놓고, 그 안에서 약간의 베리에이션을 준 게 아닐까 하고요. 70억개의 성격과 외모를 만드는 건 신에게도 힘든 일일테니까요.
그게 제가 종종 남편이나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는 '인간 카테고리설'입니다. ㅎㅎ
근데 이게 꼭 허무맹랑한 것 같진 않아요. 우리가 잘 아는 MBTI나, 그 밖의 다양한 성격검사를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고 너는 어떤 사람인지 분석을 할 때도 기준이 되는 큰 덩어리들이 있잖아요. 아주 작고 세밀한 것들은 다를 수 있지만 크게 봐서 외향적인 사람인지, 내향적인 사람인지 정도로는 덩어리로 생각할 수 있죠.
인간 카테고리설을 만들고 나니까 좋았던 점은 소설을 쓸 때 캐릭터 창조가 쉬워졌단 거에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인물 하나를 만들려고 할 때는 막막하던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인간의 카테고리를 선택할지를 먼저 정하고 나면 나머지는 공식처럼 착착 정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몇몇 부분들만 개성있게 다듬으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어디서도 본적없는 70억명 중 한명쯤은 있을 누군가를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인간 카테고리의 종류를 떠올릴 때, 늘 저기에 속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룹이 있습니다. 일종의 워너비 같은 건데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살면서 한번씩 스치게 되면 늘 기분이 좋은 사람들이에요.
제가 한번 묘사해 볼테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들이 어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환하게요.
조금 어색한 사이라던가, 조금 뾰족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을 때 그들이 나타나면 왠지 모르게 안도가 되고 모두 미소를 띄며 공기가 부드러워져요. 그래서 어떤 모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들이 얼른 모임에 나와주길 바라기도 하죠. '걔가 와야 재미 있어지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그들이 개그맨처럼 막 엄청 웃기거나 늘 외향적인 성격인 것도 아니에요. 유머 감각이 없진 않지만 앞으로 나서서 분위기를 쇄신하려 든다거나 이끌어가려고 하진 않습니다. 약간 오라(Aura) 같은 것인데, 등장과 함께 그들의 오라가 공간 자체를 느슨하고 유쾌하게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딱히 적도 없어요.
연예인으로 예를 들면......조정석씨 같은 느낌?
그런 친구들의 외모는 모두 천차만별이지만 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라는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느낌. 애쓰지 않아도 모두가 호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느낌. 부러워서 한번씩 샘이 나면서도 그 친구들이 좋아서 함께 있고 싶었죠.
말 한마디 없이 등장만으로도 말랑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그냥 타고 나는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저런 사람이 되고싶다, 사람들이 날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다 생각해도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닌 거죠.
그리고 또 하나, 그런 친구들은 내가 애를 써서 곁에 두려 한다고 해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쟤랑 친해지고 싶다, 쟤랑 제일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 생각하고 노력할 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관계는 오히려 그냥 둘 때 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 종종, 어쩌다 한번씩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 그런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내가 아는 모두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 미소가, 내 한마디가, 내 토닥거림이 그들 속에서 의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있지 않나요?
세상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순 없죠. 내가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저는 그냥 그렇게 결정했어요. 내가 사랑의 오라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세상 속에서 살겠다고.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살면 내 세상이 다 사랑이 되는 거잖아요.
나에게 아첨하고 아양을 떨고, 내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란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잘못하면 잘못하고 있다, 바르지 못한 길을 가면 돌아와라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해요. 나를 나 자체로 아끼고 네가 있어 좋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죠.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어요? 온 삶을 통틀어 다섯도 안될 수 있고, 셋, 또는 일생 단 하나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 세상을 구성할 누군가를 세심히 고르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해요.
그리고 또 하나.
인연에도 끝이 있음을 너무 무겁지 않게 간직하는 것.
한때는 나의 전부였고 내 삶을 지탱하던 누군가일지라도 인연이 끝나면 보내줘야 할 수 있습니다. 끝난 것을 붙들고 이리저리 고치려다가 나까지 망가질 수 있어요. 인연은 소중하지만 시작이 있는 것처럼 끝이 있더라고요. 그 끝이 내 삶이 끝나는 날과 일치하는 것이 대단한 행운이지 그렇지 않다 해서 그게 불행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모든 상황이, 사람이, 인연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 내가 사랑받고 있다 생각하게 하는지 살피고 보내줄 사람들은 보내주고 또 새로운 인연들로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유기체와 같아서 늘 변화하거든요. 변화가 당연하다 생각하면 인생이 그다지 슬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 챕터에 들어간 카드는 컵 에이스(Ace of Cups)입니다.
정서적으로 충만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네요. 새로운 시작, 특히 감정적인 시작을 뜻하기 때문에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이나 인연을 뜻하고요.
원작에 있던 올드잉글리쉬 타로의 카드도 똑같이 Ace of Cups였어요.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비슷한데요, 중요한 것은 그 관계를 시작함에 있어서 나의 받아들임이 필요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어요.
새로운 일, 새로운 공부, 새로운 친구, 새로운 인연, 새로운 환경.
하지만 새로운 시작의 방아쇠를 당기는 건 늘 우리의 마음입니다. 자 지금부터 시작, 다시 새롭게 시작!을 외칠 수 있는 건 내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니까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순 없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으로 내 세상을 꾸리는 건 할 수 있을 거에요. 준비됐으면, 해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