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 축하해
음력 9월 5일. 어제 친정엄마의 생일이었다. 음력으로 챙기기에 매년 날짜를 계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대부분 10월에 생일이 있다. 가을의 초입, 이 좋은 계절에 우리 엄마가 태어났다.
지금이야 스스로 미역국을 끓이기도 하고 내가 끓여서 들고 가기도 하지만, 결혼을 하고 엄마는 생일을 한 번도 챙긴 적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왜.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혼자 미역국이라도 끓여먹으면 되는데 왜 그조차도 안 하고 살았던 걸까.
예전에는 그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과 같은 달에 생일이면서 남편보다 아내의 생일이 빠르면, 여자는 생일을 챙기면 안 된다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꺼먹는 소리인지...
남편과 같은 달에 생일일 수도 있지.
그리고 아내가 남편보다 태어난 날짜가 빠를 수도 있지.
그런 미신 같은 말로 인해 왜 내가 태어난 날 미역국도 못 얻어먹는 건지. 끓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손수 끓여먹겠다는 것도 못하게 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그 이유 덕분에 엄마는 시집온 날부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거의 30년을 생일 없이 살았다.
엄마 생일은 9월 5일. 아빠 생일은 9월 23일.
하필 같은 달에 생일이 있는 사람을 만나 우리 엄마는 긴 세월 생일밥도 못 먹고살았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이왕 태어날 거면 5일만 앞당겨 8월 31일에 태어났거나 19일 늦게 9월 24일에 세상에 나왔다면.. 그럼 생일을 꼬박 챙겨 먹을 텐데.
생일날 다른 건 몰라도 미역국을 잘 챙겨 먹어야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데, 우리 엄마가 큰 병이 오거나 오래 살지 못한다면 그건 다 할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는 순진했고 어른의 말을 아주 잘 듣는 사람이라 시어머니가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그 이야기를 수용하며 살았다. 자신의 뜻을 소리 높여가며 어른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지만, 여전히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화가 난다. 자신의 아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며느리 생일 따위는 안중에 없는 그런 발상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소문인지 진짜인지 모를 그 이야기를 할머니는 철석같이 믿었고 그로 인해 엄마는 생일을 잃었다.
생일이라는 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고, 우리 엄마가 나를 낳느라 절박했던 날이다. 그 어떤 날보다 특별하고 기념해야 할, 사랑받아야 마땅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며느리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거나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해줄 망정 아예 생일을 못 챙기게 하다니. 지금도 며느리의 자리가 마땅찮은데 40년 전 며느리들은 정말 안쓰럽다.
내가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되어보니 그 시간을 우리 엄마가 어떻게 지냈을자기 마음이 더 쓰인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며느리들은 호강을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평이 많은데 엄마가 며느리로 살던 시절에는 얼마나 딸과 며느리, 아들과 며느리를 차별하며 대했을지... 상상 그 이상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겠지...
몇 년째 음력 9월 5일이 되면 미역국을 끓여서 엄마에게 들고 간다. 음식을 잘하지 못해도 그냥 그건 해주고 싶다. 30년 동안 받지 못한 생일상, 부족하지만 이제라도 미역국은 챙겨 먹자고 그날만큼은 집밥도 하지 말고 맛있는 걸로 사 먹자고 이야기한다. 잃어버린 30년의 생일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지금은 잘 챙겨주고 싶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건강하게 오래도록
지금처럼 옆에 있어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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