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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Oct 11. 2021

30년 동안 챙기지 못한 생일

엄마 생일 축하해

음력 9월 5일. 어제 친정엄마의 생일이었다. 음력으로 챙기기에 매년 날짜를 계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대부분 10월에 생일이 있다. 가을의 초입, 이 좋은 계절에 우리 엄마가 태어났다.



지금이야 스스로 미역국을 끓이기도 하고 내가 끓여서 들고 가기도 하지만, 결혼을 하고 엄마는 생일을 한 번도 챙긴 적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왜.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혼자 미역국이라도 끓여먹으면 되는데 왜 그조차도 안 하고 살았던 걸까.

 


예전에는 그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과 같은 달에 생일이면서 남편보다 아내의 생일이 빠르면, 여자는 생일을 챙기면 안 된다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꺼먹는 소리인지...

남편과 같은 달에 생일일 수도 있지.

그리고 아내가 남편보다 태어난 날짜가 빠를 수도 있지.

그런 미신 같은 말로 인해 왜 내가 태어난 날 미역국도 못 얻어먹는 건지. 끓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손수 끓여먹겠다는 것도 못하게 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그 이유 덕분에 엄마는 시집온 날부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거의 30년을 생일 없이 살았다. 



엄마 생일은 9월 5일. 아빠 생일은 9월 23일.

하필 같은 달에 생일이 있는 사람을 만나 우리 엄마는 긴 세월 생일밥도 못 먹고살았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이왕 태어날 거면 5일만 앞당겨 8월 31일에 태어났거나 19일 늦게 9월 24일에 세상에 나왔다면.. 그럼 생일을 꼬박 챙겨 먹을 텐데. 

생일날 다른 건 몰라도 미역국을 잘 챙겨 먹어야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데, 우리 엄마가 큰 병이 오거나 오래 살지 못한다면 그건 다 할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는 순진했고 어른의 말을 아주 잘 듣는 사람이라 시어머니가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그 이야기를 수용하며 살았다. 자신의 뜻을 소리 높여가며 어른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지만, 여전히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화가 난다. 자신의 아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며느리 생일 따위는 안중에 없는 그런 발상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소문인지 진짜인지 모를 그 이야기를 할머니는 철석같이 믿었고 그로 인해 엄마는 생일을 잃었다.

생일이라는 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고, 우리 엄마가 나를 낳느라 절박했던 날이다. 그 어떤 날보다 특별하고 기념해야 할, 사랑받아야 마땅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며느리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거나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해줄 망정 아예 생일을 못 챙기게 하다니. 지금도 며느리의 자리가 마땅찮은데 40년 전 며느리들은 정말 안쓰럽다.







내가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되어보니 그 시간을 우리 엄마가 어떻게 지냈을자기 마음이 더 쓰인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며느리들은 호강을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평이 많은데 엄마가 며느리로 살던 시절에는 얼마나 딸과 며느리, 아들과 며느리를 차별하며 대했을지... 상상 그 이상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겠지...



몇 년째 음력 9월 5일이 되면 미역국을 끓여서 엄마에게 들고 간다. 음식을 잘하지 못해도 그냥 그건 해주고 싶다. 30년 동안 받지 못한 생일상, 부족하지만 이제라도 미역국은 챙겨 먹자고 그날만큼은 집밥도 하지 말고 맛있는 걸로 사 먹자고 이야기한다. 잃어버린 30년의 생일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지금은 잘 챙겨주고 싶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건강하게 오래도록 

지금처럼 옆에 있어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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