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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는 부하의 무능만을 탓할 수 없다

by 민토리

아는 동생 A가 이직한 지 3개월이 넘었을 때 전화를 하더니 내게 한 시간 넘게 하소연을 했다.

하소연의 주된 내용은 직장 상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갈수록 상사와의 불화가 깊어져서 괴롭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자, 처음에는 왜 그렇게 아는 게 없냐고 구박을 하더란다.

A는 직업 관련 스킬은 있지만, 이직한 회사의 직종에서의 경험이 적었는데, 그와 관련해서 ‘이걸 할 수 있다고 해서 뽑았는데, 왜 이걸 여기에 적용을 못 시켜?’라고 하며 답답해하더란다.


엑셀 작업을 예를 들어도 당연히 업종에 따라 사용 방법이나 도식이 달라지는데, 현재 문서를 주고서는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이걸 본보기 삼아 다음 달 보고서를 네가 만들어라,라고 했던 것.

그 와중에 모르는 게 있어 질문을 하면 자꾸만 한숨을 내쉬면서 이런 것도 못하냐고 구박하고, 너 때문에 내 일이 늘어난다고, 이럴 거면 내가 하지 너를 왜 뽑았겠냐고 핀잔을 주고…

그러다 보니 A는 자꾸 주눅 들고, 밉보이기 싫어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실수도 생겼다.

그걸 보고 직장 상사 B는 더 잔소리하고 야단치고.


회사에서 B에게 A는 유일한 부하직원이기 때문에 A는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조언도 못 구하고 혼자 끙끙 앓았단다.

어차피 그렇게 크지도 않은 회사.

B의 구박이 심해져 가니 보다 못한 옆 부서 팀장이 중재를 하려고 나섰는데, 처음에는 옆 팀장의 눈치를 보는가 싶던 B였지만, 이제는 잔소리 대신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A를 대놓고 나무라는 대신, 한숨을 푹푹 쉬면서, ‘어휴, 내가 복이 없어 그렇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팀원을 저따위로 뽑아서. 가르쳐주는데도 내가 눈치를 봐야 하고, 에휴.’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거다.

거기다 들으라는 듯 ‘요령이 없으면 싹싹하기라도 해야지, 저렇게 눈치도 없고, 일머리도 없고.’ 이런 식으로 험담까지 해대니 미칠 것 같다는 거다.


B가 오래 회사에 터줏대감처럼 일을 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러는 게 사장의 귀에도 흘러들어 갔고, 사장까지 나서서 중재하는 바람에 A는 아직 견디며 회사를 다니고는 있는데, 언제까지 이걸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통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알고 봤더니 이미 A 이전에 여러 사람이 B의 팀에 들어왔다가 짧게는 이주일에서 한 달 내에 그만뒀었단다.

그러니 회사에서 중재를 하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개판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직할 염려 없이 터줏대감으로 그 회사에 뼈를 묻으며 일을 하고 있는 B를 놓치기 싫을 수 있다.

B가 업무량이 많다고 호소를 하니, 채용을 하긴 했는데 막상 사람을 맡겨 보니 B가 매니저로서의 자질은 제로라는 걸 눈치챘을 거다.

그러면서 또 그런 위기감은 느꼈겠지. 이대로 놔두다가 B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대로 망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리스크를 줄이려고 채용은 하는데 B의 태도는 안 바뀌고, 그러니 어떻게든 신입 사원이 알아서 배워서 살아남기를 바라며 신입사원을 구슬리려고 하는 거겠지.


그걸 B라고 모르지는 않을 거다. 회사에서 자기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겠지.

한편으로는 참 안일한 태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체제가 나오면 바로 버려질 빌미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한 걸까, 아니면 절대 자신은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는 걸까?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를 두는 이유는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 인 것도 있지만, 책임 부담을 덜기 위한 것도 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조직 전체가 휘청거리는 꼴을 두고 보느니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구역으로 여러 개 나눠둔 거다.

그 구역을 관리하는 책임자는 말 그대로 책임을 진다.

만약 내가 관리하는 구역에 폭탄이 들어왔다?

폭탄을 안전하게 관리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관리자의 역할이다.


“폭탄이 들어왔어요, 그 폭탄이 내 말을 안 들어요. 저런 폭탄을 누가 여기에 넣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말을 하면 아마도 그 관리자의 상사는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래서 어쩌라고? 해결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뭐야?’


그걸 관리하라고 뽑아놓은 게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의 공을 가로채서 죄다 자신이 한 것처럼 꾸며놓는 것도, 부하직원의 무능을 탓하는 것도, 짧게는 자기 몫을 부풀리거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인 거 같아도, 길게 보면 득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네가 뛰어나면 차라리 실무를 맡기지, 거기다 부하직원들이 그렇게 무능하고, 실적을 내는 게 팀장 하나라면 차라리 그 직원들 다 자르고 팀장을 실무자로 만들어 다른 팀장 밑에 두는 게 낫지 않겠는가.


어디서 그런 말을 보기도 했다.

부하직원들이 상사를 욕하면서, 도대체 팀장, 부장 새끼는 일도 안 하고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

일은 죄다 우리한테 시키고, 자기는 노는 것 같다는 직장 상사들.


만약 진짜로 상사들이 하는 거 없이 공짜로 놀고먹으며 인터넷 쇼핑이나 하고 사우나나 다닌다면 이런 말을 들어도 합당하다.

도대체 그런 사람들을 관리자랍시고 자리에 앉혀놓은 회사도 문제가 많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승진을 했는데도 여전히 승진하기 전처럼 똑같은 양의 실무를 보고 있다면 그것도 좀 문제가 있긴 하다.

승진을 해서 관리자가 되었다는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만 보던 역할에서 전체 그림을 보는 역할로 바뀌었다는 말인데, 전체 그림을 살피는 대신 여전히 나무만 색칠하고 있다면 그것도 자기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진짜 중요해지는 역할은 실무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책임을 지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거다.

자기 구역에 들어온 게 폭탄인지 아닌지 구별해 낼 수 있고, 그 폭탄의 정확한 위험도를 측정하고, 그에 걸맞은 관리체제를 갖추는 것.

그럼으로써 결국에는 폭탄이 있든 없든 제대로 굴러가는 팀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B는 관리자 재질은 아니고, 그 태도를 바꾸지 못하면 밑에 후임을 두는 건 고사하고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현재 업무량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에 후임을 잘 가르쳐야 자기 업무를 나눠 할 수 있을 텐데, 가르치는 것 대신 갈구기만 하니 도대체 언제 배워서 써먹을 거냔 말이다.

아무리 후임이 이를 악물고 일을 배워도, 혼자 자립할 정도로 일을 배운 다음에는 그 상사 밑에서 일하는 대신 그 능력 써서 다른 회사로 이직할 텐데.


그리고 그게 내가 A에게 한 조언이기도 했다.

3개월 만에 이직하는 건 이력서에도 좋지 않으니 일단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면서 업무부터 배우라고.

영어에 ‘Beggars can’t be choosers’ (거지는 선택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딱 그 말대로다.

아쉬운 사람이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다.

개똥도 약에 쓴다고, 인간이 싫은 거지 업무가 병신 같은 건 아니니까.


물론 그것도 견딜 수 있을 정도까지만 하는 게 정답이니, 이러다가 진짜 미칠 것 같다, 잠도 못 자겠다, 회사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가빠진다 등등, 이런 증조라도 보이면 빨리 때려치우자.

직장이야 또 구하면 되지만, 세상에 나는 딱 하나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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