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디자이너들의 주니어 멘토
지난해부터 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을 위한 멘토링을 시작했다.
아직은 소수인원으로 주에 1~2시간씩 할애하고 있다.
나는 지난 7년간 이렇다 할 사수가 없었다.
동료들과는 이것저것 의견을 묻고,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하고 그럴 수는 있었지만
내가 질문하는 것과 그가 나를 보충하는 것이 당연한 관계는 없었다.
내가 멘토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나 또한 멘토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거다.
멘토가 있었다면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길을 돌아온 듯하다.
멘토 :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
오늘의 글은 내가 멘토링을 하면서 느낀 점들이다.
처음엔 내가 멘토링을 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전문적인 지식이 많은가? 스킬을 정석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가?
그것의 대답은 NO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멘토로서 내가 도울지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스킬과 팁을 알려주는 시간도 가졌지만
내가 주로 시간을 많이 할애한 일은 멘티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데 있었다.
기본적으로 멘토는 투자한 시간이 멘티보다 더 많기 때문에 멘티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나 또한 알려줄 것들이 많았는데 나한테 난도가 높지 않은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철저히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답변과 가치관을 설명해 주면 되었다.
하지만 멘티들은 주로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봤다.
왜인고 생각해 보니 그들의 경험은 0이기 때문에
내 경험이 100이든 10이든 새로운 정보로 여겼다.
주로 질문의 끝은 '모르겠다'였다.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많았고
결국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함을 해결해 주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정확하게 알려주고,
나 또한 아리송한 부분은 내가 그럴 때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알려줬다.
모르는 길을 갈 수 있게끔 길을 잡아주는 게 멘토의 역할인 듯하다.
사람의 생각은 글이나 말로 구체화되기 이전에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내가 글을 쓰고 나서부터 정립됐다.
디자인 연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이너에게 전달할 말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갖고 있던 애매한 가치관들이 어느 쪽으로든 정리가 된다.
그리고 그걸 말로써 전달하면 나는 그쪽으로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된다.
멘토링할 때는 실시간으로 가치관이 정립되는 기분이다.
물론 멘티들에게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답변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말은 분명히 해서 말하지만 막상 말하고 나서도
'내가 이런 걸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디자이너였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계속 어느 한 방향으로 말하다 보면 그게 내 아이덴티티가 될 것 같다.
어떤 가치관 강도가 1이었는데, 멘토링하다 보면 그것이 100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무엇이든 한방향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업무에 따라 적합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말이 항상 옳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멘티에게도 나에게도.
멘티들이 늘 하는 말은
"사람마다 하는 말이 다 달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다.
그럴 때 나는 "와닿는 부분만 이용해라. 여러 방식 중에 내가 하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차용해라"
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다양한 길이 있으며 멘토들은 다 각자의 길을 말한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따라도 되고, 본인만의 길을 개척해도 된다.
아직은 포트폴리오 첨삭을 도와주는 멘토링을 하고 있다.
내가 이직을 준비했었던 두 달간의 시간이 나에겐 굉장히 압축된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가지고 주니어들의 취업을 도와주고 있다.
내 포트폴리오를 먼저 보여주고, 내가 어떤 방향을 잡고 이렇게 전개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나를 기준으로 삼고 그들의 것을 교정해 준다.
몇 명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굉장히 잘 따라와 줘서
내가 보기에 명료해지고 나와 유사(?)해졌다.
그 모양이 어떻든 나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서 기분이 흡족하다.
하지만... 뭔가 더 내가 전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내가 추구하는 포트폴리오의 형태를 띠는 것이 내가 멘토링을 하는 이유일까?
내가 알고 있고, 추구하는 디자이너의 상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은 포트폴리오 첨삭을 할 때 지속적으로 어떤 마인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전달하긴 하지만 뭔가 더 분명한 수단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일방적인 강의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같이 하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멘티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굉장히 몰입하게 된다. '나도 그런 적 있었지' 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 어떤 마인드 세팅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결하는 게 지혜로운 건지 말해준다.
그러면 멘티들은 경청한다. 물론 내 말이 모두 정답이 아닌 것을 상기시킨다.
내가 절대 우위의 관계가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먼저 그 길을 걸었었던, 이정표를 박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헤맸던 길을 그나마 덜 헤매게 도와주고 싶다.
가끔 멘티들은 나에게 고맙다며 감사인사를 한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도움이 된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