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연애로 결혼한 지 2달, 만난 지는 1년 5개월.
짧은 시간인지라 우리는 싸운 적도 별로 없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하면 적은 걸까.
꼽힌 일들도 양방의 싸움보다는 남편이 내게 일방으로 화가 난 일밖에 없다.
거의 대부분이 술자리 문제, 남편을 귀찮아했던 나의 태도 문제여서
일상에서 나만 조심하면 되는 문제였다.
근데 업무에서까지도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
말했듯이 남편과 나는 사내 커플이다.
이제까지는 팀이 같아도 스쿼드가 달라서 같이 일할일이 적었다.
하지만 업무가 변동되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디자이너 - FE 개발자 관계는 매우 가깝다.
내가 디자인 한 부분을 개발자가 구현을 해야 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자주 긴밀하게 일어난다.
안 그래도 우리는 출근과 퇴근을 같이하고 매일을 함께하니까
업무 할 때 소통에서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오히려 역효과였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 대화에서는 많은 문장의 주체, 단어를 생략한다.
"저번에 말했던 그거 했어?"
"아직 안 했어"
와 같은 대화가 익숙하다. 맥락이라는 게 통하니까 서로 알아듣는 게 있다.
하지만 업무에서는 아니다. 심지어 직군이 다르다면 더더욱!
우린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평소에서처럼 배우자가 내가 하는 단어와 맥락을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면 많은 커뮤니케이션 오해가 생긴다.
일례로 이런 일이 있었다.
나 : "대기 중이라는 상태에 속한 캠페인이 없을 경우, 대기 중이라는 탭 자체를 미노출시킬 수 있나요?"
남편 : "대기 중의 캠페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탭 미노출이 어려워요."
이때 나는 '안다'라는 주체가 사용자인 줄 알았다.
사용자가 알 든 말든 우리가 미노출하면
저절로 사용자가 '대기 중'이 없다는 걸 알 텐데 뭔 상관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의 말로는 '안다'의 주체는 바로 '서버'였다.
탭 노출과 API호출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서버가 '대기 중 상태의 캠페인'이 없다는 사실을 API 호출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어서
미리 '대기 중' 상태 탭을 미노출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렇듯 서로가 말하는 주체와 맥락이 달라서
미리 얘기할 때는 서로가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
"해리, 이번에 배포하신 거에서 저번에 요청드렸던 수정사항 반영 안 된 것 같아요."
"허쉬, 요거 텍스트 깨진 것 같은데 다시 반영해 주세요."
누가 보면 정말 매끈한 업무 대화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의 배우자라고 생각하면 서운하다.
너무 F 식 사고방식 아니냐고? 맞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미소 없는 딱딱한 표정을 마주하며 저런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뭐 서운하게 했나? 왜 이렇게 서운하게 얘기하지?'를 생각하게 된다.
웃긴 건, 내가 얘기할 때도 상대방이 서운하게 생각한다는 거다.
서로 딱딱한 표정과 말투에 서운해하면서 업무모드일 때는 상대방에게 그대로 행하게 된다는 게 포인트다.
만난 지 1년 4개월 만에 결혼한 우리... 빨리 결혼을 결심한 만큼
우리가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초반에 같이 업무 할 때는 우리가 안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됐다.
하지만 업무에서만큼은 각자 추구해야 하는 바, 이뤄야 하는 바가 다르니
어긋나는 소통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개발에서는 모르겠지만, 디자인 시각에서는"
업무대화만 나누면 딱딱해서 우리는 친밀한 대화도 많이 나누기로 했다.
물론 업무얘기할 때는 업무얘기만 하지만 얘기가 종료되고 나서는 친밀한 대화도 한 두 마디 나눈다.
끝이 다정하니, 다정한 대화를 나눈 것 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가 가까운 사이이지만
그만큼이나 무너질 때 누구보다 묵직하게 상처받을 수도 있는 사이다.
익숙하니 늘 상투적으로 대화하고 행동하기보다는 더 섬세하게 소통해야 한다.
중요한 건 무엇이든지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거다.
우리가 늘 통할 것이라는, 서로에게 늘 다정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예상하지 않는 거다.
포인트는 그가 나에게 늘 다정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나 또한 그에게 늘 다정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다정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