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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Sep 28. 2024

|눈빛

허밍

 커피를 주문하고 매일 앉던 자리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한 뒤였다. 나는 하는 수없이 알바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핸드폰을 바라보며 의미 없는 스크롤을 내리고 있자 곧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어 한 모금 삼키고는 다시 시선을 떨구어 핸드폰을 응시했다. 알바생은 뒤이어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어 그들 앞에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삼십 분이 조금 지났을까. 연이어 들어오던 손님들의 걸음이 멈추었고 알바생은 곧 나의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해놓은 컵의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만 느껴지는 알바생의 시선.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지만 곧 알바생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참을 앞에 서 계시던데 무슨 생각을 하시던 거예요?"


 나는 고개를 들어 알바생과 눈을 마주했다. 똘망똘망하고 생기 있는 눈빛. 그러나 눈동자 너머에는 작은 아련이 스며 있었다. 그것은 내 신경의 문을 두드리는 그녀와의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알바생의 눈빛을 되새기느라 그녀와 나 사이에 약간의 정적이 만들어졌다. 오묘한 표정으로 당신과 눈을 맞추고 있는 나를 보며 자신의 물음이 무례했던 걸까 생각하고 있을 머릿속이 훤하게 들여다 보였다. 나는 당신이 불안해하고 있을 그 정적에 마침표를 찍는다.


 "아, 요즘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자주 멍해지네요."

 "별건 아니고 전에 이 자리에 있던 가게가 떠올라서요."


 당신의 떨림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전에는 술집이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지금 당신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당신에게 억지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뒤집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당신과의 대화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나는 전 가게의 단골이었다고 말했고 당신은 내게 그 술집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공간과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 너는 들어있지 않았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다. 너에 대해 말하는 순간의 육성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의 내 목소리는 떨고 있을 것이고 울먹일 것이고 결국 울음을 터트릴 것이 분명했다. 그 폭풍 같은 파도를 나는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 다시 한번 손님들의 행렬이 줄을 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바생은 다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든다. 알바생이 떠나간 대화의 장에 홀로 남겨진 나는 씁쓸한 침을 두 어번 삼켜냈다. 알바생이 음료를 만들며 나를 힐긋힐긋 돌아본다. 무엇 때문인가 했더니 그녀의 손끝이 비어있는 구석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옅은 미소로 그 손짓에 화답한 다음, 그녀와 대화하느라 비워낼 틈이 없었던 꽉 찬 아메리카노와 핸드폰 따위를 들고 우리가 앉아있었던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핸드폰을 보거나 이따금씩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내 머릿속의 사색. 어쩌면 우울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것들. 그렇게 나는 하염없이 너를 기다린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아메리카노 한 잔에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아 중간중간 새로운 음료와 식사 대용의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동시에 모바일 인터넷 뱅킹에 들어가 남아있는 나의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들어오는 수입은 없고 오로지 빠져나가는 것만이 가득한 거래내역들. 이제 이렇게 살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적어도 그전까지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느덧 태양이 기울어 어둑한 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오늘도 너는 오지 않는구나. 나는 미련한 사람이다.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계속 기다리는 사람.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을 향해 꿋꿋이 걸어가는 사람. 통장 잔고가 모두 떨어지면 그때는 멈출 수 있을까. 마지막 소원이 되어버린 듯 너를 다시 만난다면 그다음이 존재하기는 한 걸까.


 마감 시간이 다가온 카페에는 알바생과 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알바생으로 나의 시선이 가득 채워졌다. 그 작은 분주함 속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그 눈빛 속의 아련함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당신의 과거에도 말 못 할 무언가가 살고 있다는 거겠지. 어쩌면 너의 눈빛 속에도 저와 비슷한 감정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감추려고 애를 써도 나에게만큼은 비밀을 지키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 오늘도 너는 그런 눈빛을 한 채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요란함과 고요함이 공존했던 오늘의 기다림이 너의 눈빛으로 이어진 밤의 경계에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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