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당신이 나의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입술을 꽉 물고 숨을 들이마시고 두 눈을 깜빡이며 요동치는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진짜가 아닐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누군가에게로부터 전해 들은 이 소식이 어떤 이의 무례한 몰래카메라이기를 바랐습니다. 당신에게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리고 그 소식이 진짜임을 알아버렸을 때. 온몸에 힘이 풀려 단어 그대로 철퍼덕 쓰러진다는 느낌을 처음 느꼈습니다. 쥐고 있던 휴대폰은 매가리 없이 떨리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와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지. 말 그대로 백지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무한한 우주가 나의 머리로 들어온다면 그런 느낌이었을까요. 그렇게 당신의 마지막 안녕에 고개를 숙이며 결국 당신을 잃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낮 속에 갇혀버렸습니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태양을 잃은 낮의 하늘은 왜 여전히도 밝았을까요. 아침이 밝아오면 나는 액정이 깨진 핸드폰을 부여잡고 당신과의 문자를 되짚었습니다. 사흘 전의 당신은 여전히 존재했고 한 달 전의 당신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기억을 거슬러 1년, 2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의 이야기도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왜 어제 당신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는 걸까요. 왜 오늘의 당신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걸까요. 그리고 내일도,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을 거란 걸 저는 왜 확신해 버린 걸까요. 그렇게 눈뜨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살아내야만 했던 매일이 나는 싫었습니다. 예견하지 못할 미래가, 정확히는 당신이 없어 빛을 잃은 세상이 나는 너무도 싫었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 회색의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현실이 나는 미웠습니다.
그 후로 나는 당신을 따라가겠다는 말을 주구장창 뱉어댔습니다. 그런 생각들로만 매일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죽겠다는 말을 내뱉는 것과 정말로 죽는다는 것은 다른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어려움에 나는 당신이 없는 세상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살아가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영화 주인공의 대사처럼,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살자고. 어떤 드라마의 대사처럼 당신 몫까지 더 살아보겠다고. 이러한 망상은 한시적으로나마 저를 깊은 우물 속에서 건져주었지만 결국 다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나는 꿈꾸는 몽상가이기를 바랐지 현실을 등지고 사는 이기주의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뭐, 어쩌면 지금도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날들이 늘어갈수록 나의 색은 더 짙어졌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낮은 그 시간과 공간의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두워지길 선택했습니다. 나의 세상의 아픔을 보이지 않은 검정색으로 조금씩 채워갔습니다. 내가 사랑할 낮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낮은 과거의 아픈 사랑으로, 좋았던 추억으로 남겨두고 현재는 검정의 밤으로 가득 채우자고 생각했습니다. 아픈 멍 자국은 검정을 따라 무뎌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밤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 후로는 당신과의 과거를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더 잘 살아야 했습니다. 슬픔은 저편에 묻어두고 행복한 것들로 하루를 채워야만 했습니다.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리고 그건 여전히 진행 중인 일이지만 저는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 냈고 그곳의 하늘을 별빛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별을 만들어도 당신과 함께 있던 순간의 환한 빛에 닿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저는 이제 하늘의 별과, 별들 사이의 검정을, 당신 이후의 나의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이 가슴 한 편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어 마냥 행복하다는 말씀은 드릴 수 없을 테지만요. 그러나 당신을 떠올렸을 때 예전만큼은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내가 아픈 것보다는 지금의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당신은 나와 다른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낮과 밤을 닮아 하나가 될 순 없지만 늘 함께 존재하는 인연이었습니다. 아마 당신이 아닌 내가 당신의 길을 걷고 당신이 나의 길을 걸었더라면 내가 낮을 멀리했듯 당신은 밤을 멀리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시겠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 주세요. 그저 반대였기에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제 세상의 가장 큰 일부에 대하여 이렇게 글로나마 당신께 전해드립니다. 당신께 닿을 수는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남겨진 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이라든지 그립다는 말이라든지, 매일 밤 별에 기대어 이야기하는 제가 가끔은 미친 건가 싶기도 합니다. 당신을 꿈에서 본 지도 몇 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생각난 김에 오늘 밤 꿈에 나타나 주실 수는 없는 걸까요.
당신이 내게 낮을 선물했듯 나는 당신께 밤을 선물하겠습니다. 아직은 몇 없는 하늘의 별들이 가끔은 외로워 보여도, 당신께 닿을 즘이면 예쁘게 수놓아져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부디 어딘가에 다른 이름으로라도 존재하고 계신다면, 행복하게 지내 주시길. 머지않을 미래에 당신을 만나 전해야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