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Giving Lounge

Seamless

by 여름나무

“One thing have I asked of the LORD,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gaze upon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inquire in his temple.” (Psalms 27 : 4)


지난 토요일, 나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여겼던 두 단어, ‘토요일 오후’와 ‘서울역’을 기꺼이 두 팔 벌려 안았다. 그 자리에서 고백했지만, 그간 ‘읽고 쓰는 삶’과는 꽤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지라 그 자리에 가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약속 장소에 나오기까지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그녀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간의 고민이 무색하리만치 사라져 버렸고, 사라진 그 공간에 어떤 알아차림이 찾아왔다. 그렇지. 우리의 관계는 그간의 성취와 업적을 숫자나 결과치로 증명해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빛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색과 모양으로 비추며 살고 있는지 조심스레 고백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관계였지. 느슨하지만 은혜로운 연대, 그게 우리였지.


빛의 존재와 부재, 사진과 기록, 순수한 어린이들의 글과 책, 그리고 사람, 사람, 사람. 꽤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고 한 주가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갑자기 시작된, 어찌 되었든 앉아서 글 쓰는 밤, 프라이데이 나잇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선명하게 각인되어 가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지나아님이 언급한 Seamless가 그 단어이다.


Seamless (adjective) smooth and continuous, with no apparent gaps or spaces between one part and the next.


내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 이 모든 역할을 관통할 수밖에 없는, 아니 관통해야만 하는 내 삶의 주제가 충분히 나타나고 있는가? 나의 단 한 가지 소원,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며 살기 원하는 그 소망이 나의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매끄럽게 흘러가고 있는가?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살아가는 내 모든 삶의 조각을 통해 나의 이 소원이 드러나고 있는가? 일터에서 공간 디렉터, 커뮤니티 디자이너(soon to be), 브랜드 콘텐츠 매니저로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마음을 만날 때, 그들은 나의 다양한 역할을 통해 어떤 소망을 경험하게 하고 있을까?


그래서 결국엔 읽고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사유하고, 기록을 남기는 삶을 살기로 또다시 결정한다. 이 기록은 거창한 무언가를 입증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이 기록은 그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작은 시간과 장소에서 나의 소망이 어떤 색과 모양으로 비추고 있는지 기억하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기록이 될 것이다. 기록을 남기다 보면, 언젠가 이노우에 신파치 작가처럼 어떤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소망하며.

“‘꾸준히 하는 것’이 ‘즐겁다’는 깨달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극히 사소하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작은 깨달음이다. 하지만 내게는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한 발견이었다. 자칫 놓치기 쉬운 깨달음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꾸준히 생각을 말로 표현해 왔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지속해 왔기에 발견한 깨달음이었다.” <꾸준함의 기술> 이노우에 신파치, p37


어쩌면 나는 토요일 오후, 서울역에서 있었던 우리의 대화를 통해, ‘꾸준히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사유하고 기록을 남기는 삶을 느슨하게라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나의 단 하나의 소망이 아무리 작더라도 꾸준하게 남겨지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임을 깨달은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만의 책상을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