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주산 책!”
아침 8시 45분. 서둘렀지만 결국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나온 평일 아침. 부산 떨며 올라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첫째 아이가 흠칫하며 말을 꺼냈다. 나 혼자였다면 가까운 층에 엘리베이터를 세우고 계단으로 올라가 필요한 짐을 가지고 내려오겠건만, 두 아이의 당혹스러운 눈빛 속에서 순간 내 머리도 함께 얼어붙어 버렸다. 그 와중에 웬걸.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층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속속 타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결국 우리는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20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올라가는 길 내내 둘째 아이는 선생님이 출석 부를 때 자기 이름을 부르실 텐데, 자기가 너무 늦어서 대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며 툴툴거렸고, 이를 듣는 첫째 아이는 뭐라 말을 못 하고 눈두덩이만 벌게지기 시작했다. 20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큰아이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온 나와 둘째 아이는 우리가 내리자 곧바로 다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차마 잡지 못했다. 자, 이제 곧 주산 책을 들고 허겁지겁 나올 큰아이를 향해 둘째 아이가 무슨 말을 했을지, 그리고 자신 때문에 늦었다는 미안한 마음과 그렇지만 이 미안함을 적절히 표현하기에는 아직은 미숙한 큰아이의 미성숙한 반응은 어떠했을지 추측하는 것은 가히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두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 다 이해가 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사실은 나도 출근길이었다. 출근길의 5분 지체는 그냥 5분 지체가 아닌 것을 알기에 평소 같았으면 나 또한 마음이 몹시 불편했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내 마음 안에는 분주한 마음이 단 한 톨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큰아이의 빨개진 눈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웠고, 툴툴거리는 작은 아이의 입술은 마냥 예쁘기만 했다. 1학년 학기 초, 학교에 들어가기 싫다고, 나만 친구 없다고 후문 앞에서 엉엉 울며 들어가던 큰아이의 모습과 학교가 끝난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를 향해 달리며 “엄마!”를 자랑스럽게 외치는 작은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인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기억과 기억이 그때의 감정과 빛으로 아우러져 켜켜이 쌓이는 이 일상이 기적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기적인 것일까.
결국 나는 작은 아이에게는 큰아이의 민망한 마음을, 큰아이에게는 작은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짧은 문장 몇 개로 전해주었다. 그리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기다림을 맞이해야 할지 배워가는 과정임을 강조하며 말이다. 두 눈을 훔치며 조용히 침묵하는 두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나 또한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질문을 들은 듯하다.
“그래, 하림아. 너도 잘 기다리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