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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Jan 26. 2023

내가 시골에 살게 된 이유

자연 친화적인 삶을 꿈꾸다

벌써 시골 전원으로 들어온 지 2년 4개월이다. 인도 델리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내가 이곳 산속 시골에서 지내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이런 맛에 인생을 살아갈 활력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다 알고 있다면, 다이내믹하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포츠 경기의 재방송을 보는 것처럼 시시한 인생이 되어 버릴 테니까.


인도에서 막 들어와 거처를 삼았던 곳은 화려하고 도회적인 곳이었다. 유럽풍의 엘리웨이에서 도시의 맛을 맘껏 누리며, 그 앞으로  펼쳐진 광교 호수공원에 앉아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마셨다.


그곳을 걷기도 하고, 최고의 교육 여건을 갖춘 CCA 중앙기독초등학교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빌리고, 꽃이 만발한 교정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계절을 누렸다.


아이는 교복을 입고,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등교를 했다. 모든 것은 쾌적하고 산뜻했으며 완벽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계속 한국에 살게 된다면 수원에서 살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 후,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도회지의 분위기라고는 전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시골마을에 서있다. 그리고 어느새 이곳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를 시골 마을에 있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는 해외생활을 오래도록 해온 딸아이를 위한 결정이고 선택이었지만, 분명히 숨겨진 이유가 있었을 테다.


1. '삼시 세 끼' 프로그램이 건넨 시골 마당에 대한 로망

텔레비전 없이 생활한 길고 긴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는 IPTV를 설치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드라마도 보고, 아이의 한국어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삼시 세 끼'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삼시 세 끼 어촌 편'이다.

만약에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이곳에 우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그렇다.


시야가 탁 트인 마당에서 밥을 지어먹고,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신선하고 맛깔나게 요리를 해서 먹는 모습에 마음을 뺏겼다.


"아, 우리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


작은 씨앗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작은 솜털 같은 씨앗은 조금씩 싹을 트이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2.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이 침잔해 지고 두려움으로 덮였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현듯 세상의 종말이 오듯 팬데믹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누구와 이 문제에 대해 의논을 한 것은 아니지만, 홀로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 있었다.


'대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씨앗을 뿌려 땅에서 나는 소출을 먹도록 대비해야겠다.'


나의 이 작은 생각은 텃밭을 열심히 가꾸며 살 수 있는 시골집을 찾게 했다. 농가라도 상관없었다. 마당과 텃밭이 있는 곳이면 되었다.


3. 자연과 호흡하고 싶은 욕구

코로나 19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마치 인류의 재앙을 보는 듯했다. 혹자는 앞으로 이보다 더한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데 동의한다.


기후의 변화와 지구가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도 무언가 기여를 해야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게 시골 마을에서 살아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주어진 셈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아침을 맞고 싶었다.


새들의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꼬리 치며 달려오는 강아지들과 마당에서 노닐며, 씨앗을 뿌리고, 꽃을 심고 싶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 빨래를 말리고, 빨간 고추와 표고버섯을 말려 먹거리를 만들고, 텃밭에서 막 따온 풋고추에 고추장을 찍어 아삭아삭 씹어 먹고 싶었다.

밤하늘에 총총 떠있는 별을 보고 싶었다.


비료를 쓰지 않고 퇴비를 만들어 거름으로 채소를 기르고, 최대한 친환경적인 삶을 살기를 꿈꾸었다.

탐스러운 배추들

이제 그 모든 꿈들은 현실이 되었다.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났다. 놀랍다.

이곳 북카페 꿈꾸는 정원이 세워지고 친환경 북카페가 되었다.


내가 심고 거둔 것보다도 이웃 어르신들이 건네주신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냥 와서 뜯어 가서 먹어~~"

"배추 줄게 김치 담가~"

"무 줄게 깍두기 담가 먹어~"

"쌈 줄게 고기 구워 먹어~"

"호박 줄게~ 죽 끓여 먹어~"


행복한 일감을 주신다.

미처 다 먹지 못하고, 아껴 먹다가 다 먹지 못할 때도 있다. 냉장고가 차고 넘쳐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이렇듯 삶에서 오는 특별하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추운 겨울 날

명절 설을 맞이하여 그동안 사랑으로 챙겨주신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아주 작은 선물, 양말세트와 김 상자를 부끄럽게 전하는 내게 오히려 고맙다고 덕담을 건네시는 어르신들께 더 송구한 마음이 든다.

여전히 이것 저거 부침개와 물김치를 챙겨주시고, 식사까지 초대해 주시는 이웃들 덕분에 고독한 시골 생활이 고독하지 않게 해 준다.

감사하다.


한파가 몰려오는 찬 겨울을 보내는 시골밤은 깊고 고요하다. 무지막지한 찬 기운이 온 시골 들판을 덮고 있다.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순간, 마당 화단에 심긴 나무들이 그토록 사정없이 들이닥친 한파에도 끄떡하지 않는 걸 보며, 파릇파릇 봄을 꿈꾸며 기다린다.

생명의 힘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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