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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놀이터에서

by La Francia

좁디좁은 목조 연립주택에 기거하며 내가 하루에도 오십 번씩 아이들에게 되풀이하는 말은 “쉿! 조용히 해.”이다. 한국의 우리 집은 아파트지만 필로티 2층이라 마음껏 뛰놀아도 큰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는 보리와 담은 목청껏 soda pop 노래를 부를 수도, 맘껏 춤을 출 수도 없다.


며칠간 이어지던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반짝인 날, 우리는 간식을 챙겨 집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가미스 중앙 공원. 아담한 규모의 이곳에는 스포츠센터와 그 앞에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도 아이들의 날카롭고도 힘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장소가 있다니.


놀이터에서는 달리고, 점프하고, 잡고, 매달리고, 미끄러지는 아이들의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하다. 그 옆에는 자녀들을 눈으로 좇으며 시원한 음료를 홀짝이는 부모들이 서성이고 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이 공간에 머무른다. 섭씨 28도. 바다내음이 묻어나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청명한 하늘 아래, 낯선 나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심어져 있던 익숙한 나무들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문득, 최근에 낭독모임에서 읽고 있는 고다 아야의 『나무』가 떠올랐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상이 읽던 책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의 내 일상이 퍼펙트 데이즈와 다름없다.


작가 고다 아야는 나무를 사람을 대하듯 사려 깊고 다정하게 묘사한다. 그 문장들을 떠올리자, 눈앞의 나무들도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이 나무는 언제부터 이곳에 서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을 지켜보았을까. 매일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나무라니, 그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갑자기 놀이터 한켠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다행히 다친 것은 아닌 듯했다. 놀이기구 앞에서 제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서러움이 복받친 듯했다. 아가야, 아무래도 조금 더 커야 할 것 같구나. 아이는 아빠 품에 안겨 달래졌다.


웃음도 울음도, 그렇게 천천히 흘러간다. 뉘엿뉘엿 지는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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