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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루째의 일기

by La Francia

이곳에 와서 매일 일기를 쓴다. 아이들도 함께한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면, 각자의 일기장이 식탁 위에 놓인다. 빈 노트를 앞에 둔 아이들은 늘 같은 말을 한다.

“나 오늘 뭐 했지? 오늘 한 게 없는데? 엄마는 뭐 쓸 거야?”


내가 조용히 펜을 움직이고 있으면, 곧 아이들도 자기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하루하루를 글로 묶어내는 일이 낯설고 벅찰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두 자매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이 마음에 드는 날이면 스스로 발표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이 습관을 이어가고 싶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하루 십 분쯤은 내야지.


내가 쓰는 것은 5년 일기장이다. 올해 초부터 시작했는데, 한 장에 같은 날짜의 기록이 다섯 번 나란히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오늘, 2025년 8월 19일의 첫 칸을 채웠다면, 2026년 8월 19일 에는 같은 페이지의 두 번째 칸에, 2027년 같은 날에는 세 번째 칸에 일기를 쓰는 식이다. 한 페이지 위에 같은 날짜의 5년이 포개져 쌓여간다. 매일 한 줄씩 채워 넣을 때마다, 앞으로 다가올 해의 같은 날짜를 상상하게 된다. 내년 오늘은 어떤 하루일까. 다다음 해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이 페이지를 열게 될까. 작은 기록이 쌓일수록 내일이 더 궁금해지고, 시간의 흐름조차 기다려진다.



고개를 들어 아이들의 일기를 슬쩍 엿보았다. 보리는 마트에서 장 본 일을 적고 있었다. 담이는 몸을 옆으로 틀어 작은 어깨와 짧은 팔로 글을 가려가며 쓴다.


“담아, 오늘은 왜 가려?”

“오늘은 안 보여주고 싶어.”

“왜?”

“그냥.”



담의 일기


이곳에 온 지 열하루째 되는 날, 낮에 담이가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럼 비행기표 바꿔서 일찍 돌아갈까?” 했더니 “아빠는?” 하고 묻는다. 아빠는 여기서 일해야 해서 우리끼리 가야 한다고 하니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안 간단다. 아빠랑 유난히 각별해서 아빠가 며칠만 자리를 비워도 밤에 울곤 하는 둘째딸. 마지막 문장에 진심이 담겨있구나.






보리의 일기


첫째 보리의 비교적 사실적인 일기. 마지막 부분에 진정성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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