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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키라멘

by La Francia

여기 도착한 첫날부터 가보려고 했던 준키라멘집에 마침내 다녀왔다. 퇴근한 남편이 우리 셋이 있던 도서관으로 왔고, 거기서부터 식당 쪽으로 걸었다. 저녁 6시. 해가 지기 시작한 하늘은 실시간으로 그 빛깔이 변해갔다. 짙은 오렌지색이 푸른색과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핑크와 퍼플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비로운하늘빛. 걸으니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응당 차로 이동했을 거리를 이곳에서는 넷이서 뚜벅뚜벅 걷는다. 매일 운전하던 내가 3주째 걷고 있다.


식당에 도착하니 배가 안 고프다던 아이들도 라멘을 후루룩후루룩 잘 먹었다. 걷는 동안 배가 고파졌나 보다. 나와 남편도 진한 된장돈코츠라멘의 국물을 그릇째 들고 마셨다. 면 추가 차슈 추가까지 해서 야무지게 먹고 나와 다시금 집을 향해 걷는 길. 이제 사위는 깜깜하고 하늘에 걸린 달만 밝다. 도로에는 차가 달리고, 인도를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엄마, 우리만 차 없나 봐. 보리가 말했다. 그러게, 우리 차는 울산에 잘 있겠지?


담이가 걷기 힘들다며 칭얼거리자 나는 늘 그러듯 스무고개를 제안했다.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지루하지 않으니까. 남편이 낸 문제의 답은 딸기였는데 “살아있는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그런 것 같다 “고 답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딸기는 살아있는가. 식물이 살아있는 존재라면 식물에서 분리된 꽃이나 과실도 살아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죽은 상태란 무엇이지? 보리가 말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거야. 그럼 꽃을 꺾어서 물에 꽂아두면 활짝 피는데, 그건 살아있는 건가? 줄기에서 분리된 딸기는 움직이지 않으니 죽은 건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왕복 5k쯤 걸으며 누구도 다리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왠지 오늘 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해 질 녘부터 어두운 밤까지, 우리 넷이서 촘촘히 통과한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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