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모든 걸 변하게 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영화 대사가 여전히 회자되고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는 말이 관용어구로 쓰인다. 사랑은 변하지만 인간은 변치 않는가. 다만 인간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로부터받아온 사랑(혹은 고통)은 마치 화석처럼 마음에 새겨지는 것 같다.
남편은 어딜가든 외투를 챙긴다. 한여름에는 혹시 모를 에어컨 바람에 대비한 가벼운 가디건이, 봄가을엔 바람막이나 후디가 어김없이 그의 손에 들려있다. 오늘 덥대, 그거 필요없어. 라고 내가 말해도 어, 라고 대답만 할 뿐이다. 그와 십여년을 함께 지내오면서 이제는 안다. 그의 옷은 주인이 아닌 내 어깨에 걸쳐지기 위함이라는 것을.
사랑이 많은 그의 성정이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오래걸리지 않았다. 좋은 건 다 자식에게 줘버리고 자식이 웃어야 그제야 웃는 어머니에게 남편은 또 무엇을 물려받았을까. 세상 모든 어머니가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모성이라기보다 그저 사랑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한 부지런한 행동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꽁꽁 싸서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꺼냈다. 다른 나라에 머무는 중인 남편의 스웨터와 기모바지와 패딩자켓을 챙겨서 보내주기로 했다. 박스에 옷을 차곡차곡 담으며, 부지런히 내 마음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