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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by La Francia

아홉 살 담이는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내게로 와서 재잘거린다. 찬바람이 묻어있는 아이의 옷자락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나는, 듣는다. 사람은 누구나 맞장구치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어린이에게는 특히나.


미주알고주알. 작은 입에서 두서없는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온다. 입가에는 검은 소스를 묻힌채로. 어린이들은 입만 봐도 뭘 먹고 왔는지 알 수 있다. 냅킨에 물을 묻혀 입가를 살살 닦아주며 물었다. 담아 오늘 혹시 짜장이었… 내 말을 듣자마자 화제는 급식으로 이어졌는데 오늘은 무엇보다 급식에서 나온 디저트가 너무 맛있었단다. 마시멜로 조각을 초코딥에 찍어먹는 제품이었다고 한다. 담이가 함께 밥 먹던 희주랑 나눴다는 대화를 옮겨본다.



희주: 이거 진짜 너무 맛있어! 담아 있자나, 내가 죽을 때 무덤 앞에 이거 뚜껑 열어서 갖다 놔줘.

담: 응 그래 그럴 수 있능데, 근데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해?

희주: 음 그러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갖다 놓을게.



뚜껑 열어서 라는 구체적 요청이라니. 희주는 최근에 어디서 뭘 본 걸까. 생각하며 나는 딸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담이가 죽어서까지 먹고 싶은 음식은 대체 무어냐고. 음.. 모르겠어.

그것이 떠오르지 않아서 내일까지 생각해 가서 말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요즘 담이는 감자책방에 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 그곳에 가면 다정한 책방지기님이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매달 정해진 주제가 있는데, 지난달은 호박이었고 이번 달은 사랑이라고 한다. 호박이었던 11월에는 호박팬케이크를 굽고, 호박 전등갓을 만들어왔었다.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담이가 일주일 중 가장 기다리는 화요일.(책은 핑계고 만들기를 하러 공방에 가는 모양새다.) 책방에서 나오는 담이가 오늘은 빈손이었다.


오늘은 뭐 안 만들었어?

응. 오늘은 썼어.

뭐를 썼을까.


수다스럽기 그지없는 아이가 어쩐지 차분해져서는 해질녘 차창밖을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사랑을 다른 말로 바꾸면 편지, 영상통화, 엄마, 아빠.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매일 영상통화를 하는 담이는 사랑이라는 말에서 곧장 아빠를 떠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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