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타고 있다.'
버스를 완전히 잘못 탔다. 원래 타려던 버스는 하루에 한 번 지나가는데 이미 오래 전에 떠났고, 이 버스에서 내리면 집에 돌아갈 버스도 없다. 꼼짝없이 타고 있어야 했다. 버스는 항상 어딘가로 향하는데, 오늘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타고 있다.’ 벚꽃나무 우거진 길이 지나가고 바다가 스쳐갔다. 강진에서 타서 해남에서 내리신 아주머니 한 분. 어디를 가시는 길일까. 혹은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일까. 이 바보 같은 외지인 둘을 태우고 묵묵히 해남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도암에 돌아와 내려주시는 버스기사아저씨. 아저씨는 매일 이 한적한 길을 돌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가끔 우리 같은 승객이 있을까. 아저씨는 이곳의 사시사철을 수없이 지켜보셨겠지. 다른 계절의 이곳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새 다시 익숙한 풍경이다. 나는 제자리인데, 많은 것이 지나갔다. 어디로 갈 지 알 수 없어서, 알려고 하지 않아서 좋은 드라이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