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어
여자에게 있어 만 이십오 년 인생 중 약 이십 년간 <집>은 안전하거나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혈연으로 엮인 어색한 타인들과의 불안전하고 불편한 동거가 이루어지는 공간. 그 공간은 동거인의 질병 혹은 경제 활동 사정에 따라 여러 번 위치를 옮겼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국가를 옮기기도 하고, 한국 안에서도 서울 송파, 충북 괴산, 충북 청주, 서울 강남을 거쳐 서울 용산으로 지역을 옮겼다. 용산 안에서도 한남동에서 보광동으로 동네를 옮겼고, 보광동 안에서도 지상에서 반지하로 층을 옮기기도 했다. 이중 대부분의 이동은 여자가 열 살 이전일 때 이루어졌다. 여자가 열 살이 되던 해 겨울, 용산으로 이동한 여자의 <집>은 용산 안에서만 자리를 옮겼다. 가장 오래 거주한 곳은 보광동의 반지하 집이다. 여자는 보광동과 근처 이태원 일대를 자신의 고향처럼 인식하고 있다.
열여덟 무렵부터 가족을 벗어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여자는 스물셋에 역세권 청년 주택 아파트에 당첨되면서 정식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드디어 불안전하고 불편한 동거를 벗어나, 혼자만의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얻은 것이다. 여자의 집에 다녀간 이들은 대부분 여자의 집을 부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의 집은 위치와 가격 측면에서 매우 훌륭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새벽 다섯 시 반만 되면 창문 너머의 철로 다섯 개 위를 교대로 혹은 동시에 지나가는 육중한 기차 소리가 이중창을 뚫고 들어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 점만 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여자는 생각하곤 했다. 가끔은 자신의 평생 운을 이 집에 당첨되는 데에 다 쓰고 만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 덮치면, 여자는 자신이 쥐고 있는 가장 큰 행운이라 여기는 <집>에 몸을 숨긴 채 한동안 침잠할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여자는 삶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별문제가 없다면 여자는 이 집에 앞으로 이년 반 동안 더 살 수 있다.
그러나 남부럽지 않은 집에 살면서도 여자가 집을 싫어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독립을 원했지만, 정말로 혼자라고 느껴질 때 여자는 집에 있는 게 무서워졌다. 오래된 연인과 헤어진 뒤 그런 순간이 부쩍 늘어났다. 밖에서는 하루 종일 웃는 얼굴로 멀쩡하게 사람을 대하다가도 고요한 집에만 들어오면 어쩐지 힘이 쭉 빠졌다. 그런 여자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돈 벌고, 식재료 구매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빨래 널고, 빨래 개고. 청소기 돌리고, 바닥 닦고, 쓰레기 버리고……. 매우 예민한 몸을 지닌 여자는 여타 사회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좋은 재료로 직접 요리해 먹으려 노력했는데, 여기에 특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여자가 본격적으로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심화됐다. 단기간에 시급을 높여 개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턱대고 모델 일에 뛰어든 여자는 나쁘지 않은 벌이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으나, 함부로 살찌거나 자세를 무너뜨릴 수 없게 되었다. 사력을 다해 외모를 가꾸고, 사회성을 한껏 발휘해 돈을 벌기 시작하자, 여자는 집 밖에서 이전과 다른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프리랜서 모델을 하고 있다고 답하면 남자든 여자든 큰 관심을 보였다. 여자는 그 관심이 싫지 않으면서도 어쩐지 불편했다.
집에 돌아오면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발 디딜 틈 없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 꽉꽉 들어찬 음식물 쓰레기와 페트병이 여자를 기다렸다. 집 밖에서 온 힘을 꺼내 쓰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여자는 집안을 정돈하고 가꿀 여력이 없었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아 저거 해야 하는데 하고 핸드폰만 만지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외출하기 바빴다. 여자의 집은 갈수록 더러워지는데 여자의 몸값은 자꾸만 높아졌다. 여자는 혼란스러웠다. 어질러진 집이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 같아 부끄러웠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게 싫어 일없이 바깥을 나돌며 집에 늦게 들어가기도 했다.
카메라 셔터 음과 외모 칭찬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촬영이 끝난 뒤에는 유독 집에 가기가 싫었다.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으로 밖에 나갔을 때 받게 되는 평가와 집안 꼬락서니 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여자는 불안해졌다. 나는 니들이 좋아하는 예쁘고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집안 꼴은 존나 엉망이고, 외로움에 절어 허구한 날 데이팅 앱을 깔았다 지웠다 하는 병신인데. 여자는 둘 중 어느 하나의 모습이 거짓이거나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이왕이면 카메라 앞에 있는 쪽이 진짜였으면 좋겠고 생각했다. 더러운 집과 우울한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여자는 집에 혼자 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끝 간 데 없이 깊은 우울과 고독감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여자의 생존에 방해되는 요소처럼 보였다. 갈수록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거북하고 두려워졌다. 집이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모습을 부정할수록 여자의 우울과 무기력은 더 깊이, 더 오래 지속되었다. 여자는 어쩌면 혼자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모습만이 진짜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그런 엉망인 자신을 타인에게 들킬지 모른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면서도 남들 앞에만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척 태연한 척을 뻔뻔스럽게 잘했다. 그 점은 여자의 장점이기도 했고 단점이기도 했다. 타인의 신뢰를 쉽게 얻어 일을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었지만,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도 속일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상태가 정말 어떠한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여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기 전까지 자신을 잘 돌보지 못했다. 최근에 그런 생각이 자주 강하게 들면서 여자는 한 달째 바깥 활동을 중단한 채 칩거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자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한 달 전까지 여자가 아르바이트하던 장어집에 생일을 맞은 이가 있어 그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최근 감정 기복이 심했던 여자는 술을 마시기만 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금주하고 있었으나, 오랜만에 사람들 얼굴이나 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 슬쩍 끼어든 것이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지만 여자는 손뼉을 치고 깔깔거리며 한껏 그 자리를 즐겼다. 그러한 모습이 마냥 거짓이기만 한 건 아니라고, 한 달째 집에서 자신을 돌본 여자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불쑥, 내가 눈치 없이 자꾸 끼어서 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딸깍. 한번 스위치가 눌린 불안은 이잉 이잉 사납게 울려대는 화재경보기처럼 뇌를 온통 지배했다. 여자는 타인에게 미움받는 걸 죽을 만큼 두려워했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의 수위가 비합리적이라는 것쯤은 여자도 알고 있었지만, 당장은 그 불안을 지울 수도 통제할 수도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 쉬는 방법을 까먹고, 표정 관리가 어려워질 때쯤 여자는 졸리다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지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곳까지 걸음을 옮기자 여자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집에 들어가면 자해하거나 자살 사고가 깊어질 것 같아 여자는 집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여자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덮쳐오면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버릇이 있다. 아직까지 비건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감자칩을 먹고 싶었지만 조금 먹다 보면 기름 전 내가 나서 전과 달리 혼자서 한 봉지를 잘 못 먹으므로 패스했다. 혹시나 하고 냉동 제품 칸을 들여다보는데 유부우엉김밥이 있었다. 비건이었다. 여자는 반가운 마음으로 김밥을 집어 계산대로 가져갔다. 띡. 바코드 인식음 뒤에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편의점 점원이 말했으나 여자는 안녕히 가시지 않고 취식대로 직진했다. 전자레인지에 봉투를 찢은 냉동 김밥을 넣고 조리 시간을 2분으로 설정을 한 뒤, 조금 옆에 떨어진 초콜릿과 젤리 코너를 서성였다. 2분이 지나 김밥 상태를 확인해 보니 가운데가 덜 녹았다. 1분을 더 돌린 뒤 여자는 취식대에 앉아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봉투를 요령 없이 찢은 탓일까. 윗면은 밥알이 말라있고 아래는 물기가 흥건해 김밥을 들어 올리면 젖은 김밥이 아래쪽 가운데 부분부터 쭉 찢어졌다. 윽. 맛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최악의 식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먹는 행위와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므로, 여자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김밥을 입에 넣기와 씹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불안에 꽂혀있던 뇌와 몸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 같았다. 다 먹고 자리를 정리한 여자는 성분상 비건인 봉지 라면 두 개를 추가로 결제해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선 여자는 잠시 망설였다. 홀로 방에 들어서는 순간 외로움이 극심해지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외로워하기에 집보다 나은 곳은 없다며, 여자는 스스로 달랬다. 긴장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후- 심호흡한 뒤 도어록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현관을 지나 실내등을 켜자 어둑했던 방의 풍경이 드러났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하고 아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여자는 걱정과 달리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한 달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을 치우고 가꾼 보람이 있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아직 곳곳에 짐이 쌓여 있기는 했으나, 이전보다 한결 정돈된 집이 제법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여자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실에 갔다. 팬티에 피가 살짝 비쳤다. 아. 생리하려나 보다. 어쩐지 감정 기복이 심하더라니. 여자는 대야에 물을 받아 피 묻은 팬티를 담가두고, 깨끗한 속옷을 꺼내 생리대를 붙이고 잠에 들었다.
잠에 든 지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여자는 눈이 떠졌다. 생리가 시작된 탓인지 몸은 피곤한데 묘하게 정신은 맑아져 다시 잠이 오질 않았다. 여자는 떡과 자몽으로 대충 요기하고 도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꺼내 왓챠 앱을 켜고 “보고 싶어요” 한 목록을 스크롤했다. 고심 끝에 <오오마메다 토와코와 3명의 전 남편>을 정주행 하기로 한다. 한창 몰입하고 있을 무렵 슬금슬금 생리통이 몰려왔다. 진통제 하나쯤은 미리 사둘 걸 그랬나.라고 생각할 때쯤 아랫배 통증이 무서운 속도로 강도를 높였다. 여자는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영상 재생을 중지했다.
「これは… ちょっとなくない?」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여자는 방금까지 보던 일본 드라마의 여파로 일본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침대에서 배를 부여잡고 끙끙대는데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진짜 큰일 난 거 같은데. 누가 자궁을 쉬지 않고 비틀어 짜기라도 하듯 배가 아팠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 참을 수 없이 괴상하고 불쾌한 감각이 들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몸을 배배 꼬아 터뜨려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악… 윽… 억… 흐윽… 자세를 바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는 미세한 신음을 흘리며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곧이어 몸에 난 구멍으로 뭐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는 안 된다. 화장실에 가야 해.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벽을 짚고 어찌어찌 화장실까지 당도한 여자는 변기에 앉았다. 손에는 대야를 들었다. 곧이어 꿀렁꿀렁 구역질이 시작되었고 구토와 설사가 동시에 나왔다. 억… 우엑… 꾸에에에엑… 아까 먹은 흑임자 인절미와 자몽이 대야에 도로 튀어나오면서 자몽의 상큼한 향이 났다. 자몽은 토사물이 되어도 그다지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여자의 몸은 장기에 있는 모든 내용물을 내보내려고 시도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소화 기관과 자궁을 비틀어 짜댔다. 구토와 설사가 계속되며 생리혈로 빠져나가는 피를 포함해 모든 액체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손발이 뻑적지근해진 여자는 당장 쓰러져 눕고 싶었지만, 장기 속 내용물이 계속해서 왈칵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확장된 혈관 내부를 벌레가 지나다니는 듯한 엿 같은 감각이 이어졌다. 미친. 뒤질 것 같아. 어느새 가빠진 숨을 헐떡이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너무 지친 나머지 여자는 화장실 바닥에 앉았다가, 다시 변기에 앉았다가, 바지를 내린 채로 화장실 바닥에 엎드려 누웠다. 차가운 바닥에 배가 닿으면 더 아파질 것 같아서 한쪽 팔을 배 아래에 깔았는데 그건 그거대로 자궁이 눌려서 아팠다. 위험해… 진짜 위험해…라고 여자는 일본어로 중얼거렸다. 생리통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을까? 나 이러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자세 되게 추할 텐데 이런 꼴로 발견되는 걸까? 여기서 혼자 죽으면 사람들이 며칠 뒤에나 찾으러 올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소화기관이 뒤틀리며 신호가 왔다. 최소한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던 여자는 세면대를 부여잡고 기어오르듯 몸을 일으켜 변기에 앉았다.
여자가 이렇게 심한 생리통을 겪은 건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4년 전 여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동일한 증상을 겪으며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응급실에 갔는데 혈압이 너무 낮아 중환자로 분류되었다. 진경제와 수액을 맞고 몸을 따뜻하게 했더니 곧 회복되었지만, 옆에서는 말 그대로 “죽는소리”가 났다. 그때는 구급차를 불러 줬던 직원 언니도 있었고 여자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병원에 동행해 준 애인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집에서 앓는 여자는 완전히 혼자였다. 화장실에 엎드려 누웠을 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사람 얼굴 목록이 여자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중에는 4년 전 병원에 같이 가준 전 애인의 얼굴도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근처에 살고 있으며 여자는 그의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연락할 수 없었다. 그게 당연하고 옳은 일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장기에 남아있던 내용물이 거의 다 빠져나갔는지 수축운동이 잦아들었다. 여자는 변기 물을 한 번 내리고 대야에 담긴 토사물을 따라버린 뒤 다시 물을 내렸다. 덮은 변기 커버 위에 대야를 올려뒀다. 대야를 씻을 힘까지는 없었다. 어으…허으…으어… 골룸 목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비실비실 침대로 돌아온 여자는 곧바로 쓰러져 누웠다. 춥다. 이불을 발끝까지 덮고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가장 배가 덜 아픈 자세를 찾으려고 애썼다. 응급 처치가 가능한 병원이 근처에 있다는 광고를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본 것 같은데…. 아파트 단톡에 물어봤더니 누군가 병원 이름을 알려줬다. 용산역 쪽이구나… 멀진 않은데… 지금 가려면 택시 타야 되나… 돈 아껴야 되는데… 근데 타러 갈 순 있나… 가면 얼마 나오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던 여자는 까무룩 잠들었다.
두세 시간 뒤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어둡고 이불은 포근했으며 여자는 죽지 않고 혼자 침대에 누워있었다. 화장실 변기 커버 위에는 검은깨고물과 자몽 과육이 엉겨 붙은 대야가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