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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토 May 03. 2022

마세나 원수의 아이큐는 100 !

캐서린 콕스의 황당한 지능지수 연구


1926년, 미국의 심리학자 캐서린 모리스 콕스[Catharine Morris Cox]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기반으로 하여 <The Early Mental Traits of Three Hundread Geniuses (천재 300인의 초기 지적 특성)> 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그녀와 동료 연구자 루이스 터먼[Lewis Terman], 렐라 길런[Lela Gilan] 등이 공동 기획한 연구총서 <Genetic Studies of Genius (천재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 시리즈의 제2권이었다. 그들은 천재성, 즉 선천적으로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했기에 지적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인 아이큐 지수와 천재들의 삶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의 일환으로, 콕스는 1450년부터 1850년 사이 인류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301명의 0세부터 27세까지 행적을 바탕으로 그들의 '초기 아이큐'를 측정하고 이 아이큐 수치와 인물의 저명도 간에 연관성이 있는가를 관찰하려는 (어떤 의미에서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301명의 분석 대상 중 282명은 제임스 맥킨 캐텔[James Mckeen Cattell]이 만든 <역사를 움직인 인물 1,000명> 목록에서 시대와 직업, (해당 인물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자료의 유무를 고려하여 순위대로 끊은 것이었으며, 나머지 19명은 순위 내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고 생애 자료가 충분한 인물들이 선정되었다. 콕스는 각 인물의 아이큐를 A1(0세에서 17세까지), A2(18세에서 27세까지)의 두 종류로 나누고 기본적으로 평균 수치 100씩을 부여한 뒤, 그들의 생애 자료에 근거하여 특정 수치를 가산하거나 감산하는 방식으로 아이큐를 측정했다. 


<천재 300인의 초기 지적 특성> 속표지


그런데 여기까지만 읽어 봐도 살짝 당혹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날 가장 공신력이 있다고 알려진 웩슬러 지능검사도 숙련된 임상심리사의 지도 아래 2-3시간씩 수행하는 법인데 본 적도 없는 옛날 사람의, 그것도 그들의 어린 시절 아이큐 수치를 어떻게 행적만 가지고 산출할 수 있단 말인가?  위저보드를 가지고 나폴레옹의 영혼을 소환하여 문제를 풀게 하면 된다 이러한 의문은 콕스의 저서를 읽을수록 해결되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한다. 콕스의 연구는 근본적으로 객관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연구가 최소한의 객관성을 보장받으려면 적어도 세 가지 전제조건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콕스는 셋 중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조사 대상인 301명 간 거의 동등한 수준의 생애 자료 확보. 부모, 아동기의 성격, 학창 생활 등에 대해 자세한 자료가 남아 있는 인물 A와 어린 시절의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물 B가 있다고 가정하면, 인물 B의 아이큐는 인물 A에 비해 기본 수치 100에서 별다른 변동이 없을 터였다. 그러므로 각 인물의 생애 자료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비슷한 양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각국 인물 301명의 어린 시절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은 역사학자 수십 명이 협동해도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콕스는 이 과업을 해내는 데 실패했다. 그녀는 충분한 생애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인물들을 부득이하게 다른 인물들로 대체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인물 간의 정보량 편차는 상당히 컸다. 


둘째, 각 인물의 생애 자료를 정량적인 아이큐 수치로 바꿀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 마련. 그러나 생애 자료라는, 질적 분석을 통해 얻어낸 이야기들을 다시 양적방법론에 의거하여 수량화, 표준화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였다. 콕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콕스가 제시한 기준은 '어릴 적 견문을 넓힐 기회(여행, 독서 등)가 얼마나 있었는가?', '탐구심과 자신감이 있었는가?', '새로운 것을 얼마나 빨리 이해했는가?' 등 수치로 환산하기 애매한 항목이 대다수였으며, '부모의 지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나 '아동의 도덕심(즉 모범생인가 아닌가)' 처럼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항목까지 존재했다. (이를테면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경우, 부유하고 교양 있는 부모를 둔 아동은 단지 그런 부모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소작농 집안의 아동보다 아이큐가 높게 나올 수 있었다!) 각 항목에 점수를 부여하는 평가 척도 또한 None at all  (-1), Any at all (0), Considerable (+1), Very great (+2) 처럼 모호해서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컸다. (Considerable 과 Very great 사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셋째, 연구 대상의 익명성 유지. 콕스의 연구는 이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것이었고, 따라서 각 인물에 대한 연구자 개인의 편견이나 사회의 인식이 아이큐 판정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우리가 뉴턴, 가우스, 모차르트, 다빈치 같은 소위 천재들의 지적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므로 콕스 자신이 자료 수집과 평가를 같이 하기보다는, 자료 수집자를 따로 두고 콕스는 수집자로부터 익명 처리된 생애 자료를 넘겨받아 순수하게 아이큐 수치 계산만을 진행하는 편이 보다 공정한 연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콕스가 산출한 301명의 아이큐 중 평균이 가장 높은 수치 10개와 가장 낮은 수치 10개 - A1수치로 정렬>


콕스가 계산한 아이큐 중 평균 최고치를 기록한 독일의 문호 괴테(A1 185, A2 200)와 최저치를 기록한 프랑스의 명장 마세나(A1 100, A2 105)의 사례 비교는 이 연구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괴테는 1749년 프랑크푸르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법대를 졸업한 법률가였고 어머니는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다. 학문, 특히 문학에 관심이 많아 서재에 2천 권이 넘는 책을 두었던 부부는 어린 괴테가 언어와 작문에 재능을 보이자 크게 기뻐했다. 8명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받은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했으나 곧 자신의 흥미와 적성이 문학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유명한 교수들의 문학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문학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고민이 생기면 잠시 여행을 떠나 정신을 환기시키곤 했다.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습작을 써 오던 그는 25세의 나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내놓아 일약 유럽의 스타 작가가 되었다. 


괴테의 생애 자료를 분석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괴테는 미국에서도 이름을 못 들어 본 사람이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위인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의 편지, 선생들의 코멘트, 학교 기록, 괴테 본인의 회고 등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수없이 많았고, 작가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이해하려면 생애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그의 어린 시절을 다룬 2차 문헌도 여럿 있었다. 그 자료들이 증명하는, 27세가 될 때까지 괴테가 걸어온 인생길은 가산점을 받을 요소가 가득한 탄탄대로였다. 콕스는 괴테에게 아이큐 200이라는 놀라운 점수를 매길 수 있었다. (다만 콕스의 아이큐 척도는 비율지능지수에 가까운 것으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준편차 15의 편차지능지수보다 수치가 높게 나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30대의 괴테

그러나 콕스는 마세나의 생애 자료 앞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마세나는 1758년 니스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퇴역 부사관 출신의 식료품 가게 주인이었다. 6세에 고아가 된 마세나는 학교 문턱을 넘어 볼 기회라곤 없이 10세에 빵집 심부름꾼, 11세에 비누 공장 노동자, 13세에 상선 견습선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 17세의 괴테가 고트셰트의 문학 강의를 들은 소감을 기록한 뒤 미술 과외를 받으러 나갈 때, 집도 부모도 재산도 배운 것도 없었던 17세의 마세나는 선원 생활을 그만두고 혼자 툴롱 항에 내려 군에 자원입대했다.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아서는 아니었으며, 그저 군대에서 밥도 주고 옷도 주고 공짜로 프랑스어도 가르쳐 줬기 때문이었다. 27세에 그는 프랑스의 수많은 육군 상사들 중 한 명에 불과했고, 평민은 장교가 될 수 없다는 법으로 인해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장교로 진급하지 못했다. 


어린 마세나에게 관심을 기울여 준 어른도 없었고 군사사라는 특수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그의 전술적 혁신을 이해하는 데는 생애 연구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기에, 마세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료는 드물었다. 콕스가 찾아낸 정보는 일화들의 파편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그녀가 세운 기준에 의하면 가산점을 줄 요소라고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점수가 깎여서 마세나의 아이큐는 두 자리수로 추락할  판이었다. 사실 2차 문헌에 의존하기보다 - 심지어 콕스가 마세나 조사를 위해 참조한 자료는 1차 문헌은커녕 전기도 아니고 죄다 백과사전류였다 - 프랑스에서 직접 자료를 수집했다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분석해야 할 대상이 301명이나 되었던 탓에 콕스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정보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동원하여 마세나의 아이큐를 억지로 100에 맞춰 놓은 뒤 다음과 같은 두루뭉술한 코멘트로 논의를 마무리지었다 : "전함  함장의 친척집 아이라면 아이큐가 아마도 100을 조금 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두 차례의 장거리 항해를 하는 동안  견습선원이었고, 17세가 될 때까지 견습선원 일을 했다는 것 이상의 기록이 없으므로 아마도 평균 아이큐는 100 이하였을 것이다." 전함 함장(사실 이 사람은 함장이 아니라 무역선 선장이었다)의 친척이 왜 아이큐 100을 넘어야 하고, 17세까지 견습선원으로 일하면 왜 평균 아이큐가 100 이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콕스는 바로 다음 문단에서 "그들(마세나, 라퐁텐, 보방)의 초기 생애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아서, 그들의 아이큐는 실제 아이큐보다 낮게 나왔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최대130-140 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라며 완고하게 인물 분석을 이어나갔다. 


30대의 마세나

결론은 명백했다.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표현을 빌리자면 콕스의 연구는 301명의 천재성을 세심하게 관찰한 것도 그들의 타고난 지적 능력을 검증된 척도로 측정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각 인물들의 유년기와 청년기 일화에 대한 잡동사니 목록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잡동사니 목록을 콕스가 어떻게 판정하느냐가 각 인물의 아이큐 수치를 결정지었다. 대체적으로 조숙한 모범생과 같은 성격을 지녔고, 배움의 기회를 많이 얻고 성취를 칭찬받는 환경에서 자랐으며, 보다 중요하게는, 그런 사실을 알려 줄 수 있는 기록이 많은 인물일수록 아이큐가 높게 나왔다. 콕스는 허술한 생애 자료 분석으로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복잡한 그래프와 신뢰도 계수들을 연이어 제시하고 있지만 거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 각 인물의 저명도와 아이큐 수치 간의 상관관계보다 각 인물에 대한 정보량과 아이큐 수치 간의 상관관계가 더 크다는 것. 콕스는 마세나 같은 아이들의 천재성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은 그만큼 천재성이 없어서라고 주장했지만 과연 그랬을지는 의문이다. 챙겨 줄 부모조차 없는, 18세기 니스의 뒷골목에 가면 수두룩하게 많았을 꾀죄죄한 아이가 품고 있는 잠재력에 어떤 어른이 관심을 가졌겠는가? 


뭐, 여기까지라면 그냥 '별 희한한 연구도 다 있네'라며 재미삼아 읽고 말아도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콕스의 연구가 훗날 흑역사로 취급받게 된 이유는 - 놀랍게도 출판 당시에는 큰 비난을 받지 않았다 - 그 기저에 단순히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차별적인 사상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08년 프랑스의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가 최초로 체계적인 지능검사를 개발한 것은 공교육 수업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적장애(또는 경계선지능) 아이들을 가려내어 특수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콕스의 스승이자 <천재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 총서 시리즈의 필진 중 한 사람이기도 했던 루이스 터먼은 지능검사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그는 천재성이나 리더십뿐만 아니라 낮은 지적 능력과 빈곤, 범죄 성향 등을 모두 유전적인 특징으로 간주하고, 지능검사를 통해 아이들의 자질을 미리 판별하여 '각자의 분수에 맞는 교육과정과 일자리'에 집어넣음으로써 사회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IQ 수치에 따라 분류하고 있는 '공교육' (1922년)


터먼의 발상은 1920년대 공교육의 팽창이라는 미국의 사회 현실과 맞물리며, 급격히 늘어난 학생들을 서둘러 분류해야 했던 교육 당국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20년대까지 1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매년 지능검사를 치렀다. 아이들의 관심사나 성격, 가정환경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전통적인 공교육 과정에서 중시되는 언어/수리 추론능력 및 순응성 검증을 위주로 진행된 이 천편일률적인 테스트는 터먼에게 '특정 직업 (주로 저소득 직종) 종사자들의 자녀나 특정 인종의 아이들은 대체로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불어넣었다. 저서 <The Measurement of Intelligence (지능 측정)> 에서 터먼은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문장을 쓰기에 이르렀다.   


노동자들과 하녀들 가운데는 정신박약자가 수두룩하다. 이들은 세상의 천한 일이나 할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지능에 관한 한 이 테스트(지능검사)가 진실을 말해 준다 [...] 아무리 학교 교육을 많이 받아도 (교육이 이들을) 정말로 똑똑한 유권자나 유능한 유권자로 만들어 주지 못할 것이다. [...] 아메리카 인디언, 멕시코인, 흑인 중에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 이런 인종의 아이들은 특별 학급에 분리시켜 확실하고도 실용적인 (직업)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쳐 봐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겠지만, 대개 쓸 만한 노동자가 되거나 제 몸을 건사할 만큼의 능력을 가질 수는 있다. 현재로선 이런 인종이 자손을 낳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가망이 없지만 [...후략...] 

- 켄 로빈슨, 『엘리먼트 : 타고난 재능과 열정이 만나는 지점 에서 재인용.


불행하게도, 콕스는 1920년대의 다른 지능지수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터먼의 영향력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다시 마세나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콕스는 마세나라는 아이를 만나 본 적도 없었고 아는 것도 거의 없었지만 이 아이의 지적 능력을 평가할 수 있었다. 어떻게? 부모의 직업, 친척의 직업, 마세나 본인의 직업, 그리고 가정환경을 가지고서. 소위 '변변찮은' 직업을 가진 부모를 두었고 '변변찮은' 일자리에서 일했기에 마세나의 아이큐는 그리 높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친척 중 '관리자' 급 직책을 가진 사람이 있기에 평균 정도는 되리라. 아이의 천재성에 대한 기록이 없는 건 아이가 자라 온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에게 별다른 능력이 없기 때문일 터다. 그러므로 콕스의 연구에서, 마세나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삼중고를 겪었다 : 그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도 억울하고 각자의 성취와 잠재력을 기록해 줄 주변인을 만나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이 때문에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낙인까지 찍힌 셈이다. 


우생학과 엉터리 방법론에 입각한 연구라는 비판의 철퇴를 맞고 사장되기 전까지, 콕스의 위인 연구는 1920 - 1930년대 미국에서 지능검사를 선전하는 소재로써 널리 활용되었다. 위인들의 아이큐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큐를 알고 싶어했으며 아이큐를 가지고 천재와 바보를 구분하려 했기에, 아이큐 테스트는 금방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아이큐는 타인이 얼마나 똑똑한지 또는 얼마나 멍청한지를 평가하는 일상적인 잣대로 기능하고 있지만, 아이큐를 그러한 위치에 올려놓는 데 기여한 콕스의 연구 결과는 이제 삼류 자기계발서나 잡다한 역사 지식들을 모아 놓은 인터넷 글 속에서나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21세기의 작가들 일부가 '위인들  중에도 생각보다 아이큐가 높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러니 우리도 노력해서 꿈을 이루자(??)'라는, 콕스가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콕스의 아이큐 결과표를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결론이 콕스의 결론보다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더 클지도 모른다. 콕스는 인간의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지능과 가정환경에 묶어버림으로써 정작 그 장벽을 넘기 위해 사회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던 사람들에게서 도움의 손길을 치워버리려고 했으나, 자기계발서의 상투적인 문구는 최소한 그 사람들에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는 격려라도 던지고 있으니까. 물론 콕스의 아이큐 결과표를 사용하기 전, 그 뒤에 숨은 의도와 차별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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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역,『인간에 대한 오해』, 사회평론, 2003.

세라 먼데일·세라 패튼, 유성상 역,『스쿨 : 미국 공교육의 역사 1770-2000』, 학이시습, 201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임우영 역,『괴테 시선집 I』,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켄 로빈슨, 정미나 역,『엘리먼트 : 타고난 재능과 열정이 만나는 지점』, 21세기북스, 2016.

COX Catharine, The Early Mental Traits of Three Hundread Geniuses, Stanford Univ. Press, 1926.

HULOT Frédéric, Le Maréchal Masséna, Pygmalion, 2005.

ROBINSON Andrew, Genius :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 Pre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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