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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주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제7강. 도입부 다시쓰기 과제

by 회색토끼



아빠, 저는 무척 행복해요. 제가 꿈꾸던 대로 왕자님과 결혼하게 되었으니까요.

제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아빠에게 감사의 편지를 남기고 나면 남자 주인공과의 성대한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게임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가 원하던 해피엔딩은 아니긴하다. 나의 결혼 상대가 원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이 낯선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게임을 끝내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내가 정한 남자 주인공을 버리고 시스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이것으로 두 사람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연분홍색 장미가 화려하게 달린 웨딩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엔딩에 걸맞게. 그와 나는 버진로드를 지나 웨딩마차에 올라탔다. 황제 즉위식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그는 오늘 나와 결혼함과 동시에 이 나라의 새로운 황제가 될 것이다.

자, 이제 끝인데.

원하는 대로 했음에도 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 이후의 스토리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어때, 행복해?”


남자가 내게 말했다. 그는 섬뜩하리만큼 차갑고 날카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얼굴이었는데. 다른 사람 같았다.


철컥.

손목에서 차가운 금속성이 느껴졌다. 마차 좌석 팔걸이에 수갑 한 쪽이 채워져있었다. 나머지 한 쪽은 나의 손목에.

그렇다, 갑자기 결박당한 셈이다.


“지금...뭐하는 거예요?”


휘익-

때마침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꺄악! 불이야!”


거리에서 우리의 행진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진짜 습격이었다. 불살은 한 두개가 아니었고, 아름다웠던 광장은 불길에 휩싸였다.


우지끈.

심지어 우리가 타고 있던 마차를 끌던 말이 불살에 맞았다.


“저, 전하! 조심하십시…으악!”


말은 그대로 고꾸라졌고, 그 말을 타고 있던 마부 역시 추락했다. 충직한 마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인을 생각했다. 마차는 그 덕에 덜컹거리며 멈추었다. 곧 두쪽으로 갈라질 기세였다.


“내 결혼선물 맘에 들어?”

“뭐…뭐라고요?”

“난 먼저 가 있을게. 나의 신부여, 너도 올 수 있으면 와봐.”


그는 마차 바닥을 향해 나를 홱 내팽겨치더니 본인은 그대로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마차는 폭삭 무너져내렸다.

이런 건 게임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엔딩 이후에는 언제나 개발자들의 이름이 크레딧으로 올라갈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건가?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불길 속에서 빠져나가 내가 정말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남자에게로 가야겠다 결심했다.


그 순간.

땅이 흔들리고 머리 위에서 찬 바람이 일렁였다. 나는 자연스레 위쪽을 바라보았다.

가장 날렵하고 매끈한, 검은색 비룡이 펄럭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두근, 그 위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짙은 군청색 제복을 입은 남자가 한 쪽 면이 붉은 망토를 흩날리고 있었다.

그래, 나의 최애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지. 내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내 앞에 나타나줄 줄 아는 남자, 내 남자주인공이 될 만하다.


어떻게 알고 왔어?”

“일단, 탈출부터 하지.”


나는 가까스로 팔을 뻗어 그의 손을 간신히 붙잡았다. 불 붙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가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자 신기하게도 날 결박하고 있던 수갑이 손쉽게 끊어졌다. 마지막 화마가 솟아 오를 때 나도 동시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한 팔로 가볍게 나를 안아 자신의 앞자리에 앉혔다.


가고싶은 데로 데려다줄게.”

황제 즉위식하는 곳으로...가야 해.”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늘 위로, 영원처럼 날아올랐다.



이 글은 제가 올해 제일 처음 썼던 웹소설의 도입부입니다.(2025년 6월경...)

다른 버전으로도 써봤다가(안전한 버전) 옛날 버전이 더 마음에 들어 그 버전을 좀 다듬어 다시 써보았습니다. 이 글은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노잼이라고 폐기당했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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