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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마음 쓰지 말기를

관계(關係)의 다섯 단계

by gracious man

관계는 나무처럼 자란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흡사하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줄기가 자라나고,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워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대부분의 씨앗들은 각 단계에서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생장(生長)이 멈추게 된다..


우리가 맺어 가는 관계 또한 이와 같아서 열매를 맺는 관계까지는 많은 시간과 마음의 나눔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또 그 이상의 아픔과 멈춤이 있다. 처음에는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인식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점점 더 깊어지고, 때로는 가지치기를 하듯 멀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가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 것도, 깊어져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는 작은 풀처럼, 또 어떤 관계는 오래된 느티나무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숲이 나무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듯이 싹을 틔우지 못한 씨앗과 관계는 다른 나무가 생장(生長)할 수 있는 자양분과 토양으로, 싹과 풀에서 멈춘 관계는 나무들과 어울려 숲을 이루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관계이다.


열매를 맺는 관계는 많은 관계의 어려움과 아픔과 마음 나눔이 있어야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그냥 아는 사이 – 씨앗이 뿌려진 순간


대부분의 관계의 시작은 가볍다.

대개의 관계는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고, 서로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사를 나누는 정도, 명함을 교환하고, 이름을 알고, 어쩌면 우연히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관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관계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씨앗을 심는다고 해서 모든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관계가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추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관계는 이 단계를 거쳐야 하기에, 특별한 관계를 맺기 위해 씨를 뿌리는 관계를 소홀히 하면 열매를 맺는 나무로도 숲도 이룰 수도 없다.


우리가 맺는 관계의 70% 이상이 씨를 뿌리는 아는 사이의 관계에서 인연을 다한다.



연락하는 사이 – 싹이 움트는 순간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하면, 관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빈말이 아닐 수도 있고, 가끔 안부를 묻거나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생긴다.


연락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관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가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고, 의식과 의도를 갖고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 싹이 트기 시작한 관계는 아직 연약하지만, 관심과 시간이 쌓이면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싹이 움트는 순간은 연약하다. 그 연약한 만큼이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한 관계이다.


우리가 맺는 20% 이상의 관계가 싹을 틔우는 인연에서 역시 멈춘다.



여유를 나누는 사이 – 가지들이 자라고 잎이 가지마다 자라는 순간


서로의 여유를 나눌 수 있는 관계로 크고 작은 가지들이 자라고 잎이 가지마다 자란다.

단순히 시간적 여유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 때론 물질적 여유까지 나누는 관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관계는 더 이상 단순하거나 일방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단순히 안부를 묻거나 업무적인 필요에 의해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고, 감정을 공유하고, 힘이 되어주는 사이가 된다.


마치 가지별로 자란 무성한 나뭇잎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듯,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쉼이 될 수 있다. 힘든 날, 별다른 이유 없이 전화를 걸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이. 가끔은 서로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편안한 사이.


우리가 맺는 3%~5% 가까운 관계가 이러한 가지가 자라고 잎이 나는 관계이다. 우리가 아는 관계의 3%~5% 미만의 관계이지만 그나마 부모 형제가 포함된 관계이다. 이만한 관계도 인생에서 흔치 않지만, 한 번 맺어지면 지속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무 가지와 잎은 매년 반복되며 가지치기와 새로운 잎이 날 뿐 새로움을 이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관계이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이 – 나무가 단단해지는 순간


이 관계는 서로를 단단하게 만들고 성장시켜 준다.

그저 편안하고 나의 여유를 나눌 수 있는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극이 되어 주는 관계이다.


때로는 마음 아픈 조언을 해 줄 수 있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한 칭찬이나 위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성장(成長)과 생장(生長)을 경험하게 된다.


이 관계에서부터는 신뢰가 필요하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주고받는 조언은 간섭이 될 뿐이고, 비판이 될 뿐이다. 서로가 상대의 성장을 바란다는 믿음이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맺는 1%~2%의 관계가 이 인연에 속한다. 하지만 이 관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관계이거나, 혹은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관계일 확률도 높다. 짝사랑이고 외사랑이다. 그 만큼 맺기 어려운 관계이다. 이 관계가 명확하게 있는 인생이라면 행복한 인생이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헌신(獻身)할 수 있는 사이 – 열매를 맺는 관계


관계의 궁극적인 마지막 단계는 헌신(獻身)이다.

헌신이란 단어는 무겁게 다가온다.


나를 희생하고 나의 필요를 포기해서라도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헌신이 자기희생처럼 인식되기 싶지만

헌신(獻身)은 희생(犧牲)과 다르다. 헌신은 자발적인 봉헌(奉獻)의 의미가 강하다.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상대방이나 어떤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진심(眞心)을 담은 진심(盡心)이다. 나무가 자기 자신을 헌신하지 않으면 숲을 이룰 수 없다. 누군가를 위한 헌신은 자신의 생장(生長)으로 더욱 강력하게 이어진다.


반면 희생은 자신을 버리거나 포기하는 의미가 강하다. '희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제물이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때문에, 이는 종종 자기부정이나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 희생(犧牲)은 헌신(獻身)이 아니다.


건강한 헌신적 관계는 자기 파괴적이지 않아야 한다. 내가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헌신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연스럽게 내어줄 수 있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로가 기꺼이 나의 필요를 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 때, 그 관계는 단단해지고 지속되는 관계를 넘어 하나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맺는 관계 중에 1% 이하 혹은 높은 확률로 이런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헌신은 쉽지 않다.




관계는 반드시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마치 자라는 나무와 같지만, 꼭 모든 관계가 커지고 자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싹도 움트지 못하기도 하고, 작은 들꽃처럼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고, 어떤 관계는 평생을 함께하는 큰 나무처럼 남기도 한다. 때로는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멀어지는 순간도 있다. 모든 관계가 꼭 ‘헌신’까지 가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아는 사이로 남아도, 연락만 주고받는 사이여도, 여유를 나누는 사이여도, 그 자체로 충분할 때가 많다.


나무가 억지로 자라지 않듯이, 관계도 자연스럽게 흐를 때 가장 건강한 모습으로 남는다.


그러니 관계에 너무 마음 쓰지 마라.


가장 좋은 관계는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관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실제로 그 무엇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관계가 되면 그 관계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 나에게 있어 무언가를 같이할 수 있는 관계, 나를 존중해 주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에 집중할 때 서로가 헌신(獻身)할 수 있는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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