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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Nov 24. 2024

한민담서(韓民談書) 5

5-5.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본 국민의식문제

 이하는 필자 본인의 개인 의견임을 감안하고 보기 바란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논란은 국민들 대부분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 한강 작가가 수상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 중국 작가가 적격자라느니 심지어는 노벨상을 준 스웨덴 한림원 앞에 가서까지 노벨상 자체를 폄훼해서 일어난 일인데, 이런 논란은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퍼져있는 국민의식인 양극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사실 양극화는 하나의 주제나 하나의 사건에 대한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시선으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전제(專制)와 민본(民本), 당파(黨派)와 당파(黨派), 반일(反日)과 친일(親日), 반공(反共)과 종북(從北), 독재(獨裁)와 민주(民主), 보수(保守)와 진보(進步) 등 긴 세월 동안 계속되어온 한국사회의 병폐라는데 문제가 있다.

 나를 확장하면 가족이 되고 가족을 확장하면 이웃이 되며 이웃을 확장하면 한국인이 되어 모두가 국토와 혈통을 연대하는 국민으로 나의 연장선에 있는 한 사람인데, 나의 연장선에 있는 한국인 누군가가 세계적인 상을 탄 것을 기뻐해도 모자 잘 판인데, 기를 쓰고 깎아내리고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그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나긴 의식 분리나 분단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특징으로 보이는데, 미국에도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분단의 역사로 시작해 노예제도 문제로 인한 의식분리로 남북이 나누어져 싸웠던 역사를 가졌기 때문인지 인종차별로 인한 양극화가 있다. 

 분단의 역사가 없는 이웃 일본의 경우에는 극우와 극좌가 있지만, 내가 아는 한 최소한 같은 국민끼리 편을 갈라 기를 쓰고 싸우지는 않는다. 일본국민들이 국우를 욕하는 일을 보지 못한 것 같고, 일본의 극좌는 일본이 잘못한 것을 비판하긴 하지만 일본 자체를 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일본에서 역사 왜곡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분단의 역사가 있음에도 그것을 극복한 독일의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졌지만 자유롭게 무역을 하고 사람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서로 계속 교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북한이나 베트남 등의 양극화가 없는 국가도 있지만, 이들의 경우 공산 독재체제의 폭압으로 인한 것으로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결국, 양극화 문제는 국가가 겪은 의식 분리나 분단의 역사와 관련이 있고, 결국 이것은 힘 있는 자의 폭력과 폭력에 당하는 힘없는 자의 고통과 관련이 있는데,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 이런 양극화가 기원후 전체 역사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져 와서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극심하다는 특징이 있다.  

    

 양극화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았는데, 양극화 문제의 본질을 따라가다 보면 왜 한강의 노벨상 수상 논란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논란이 있는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 채식주의자는 물론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정서는 전술했듯이 “① 강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 ② 약자의 고통에 대한 연민 ③ 평화로운 삶을 바라는 염원”인데, 즉 “강자는 폭력을 행하지 말고, 약자는 강자의 폭력에 고통받지 않고, 서로 공존하고 도우면서 평화롭게 살자.”는 것으로 고조선의 철학사상이자 대한민국 건국이념으로 교육법에 제정되어있는 홍익인간사상과 맞닿아 있다. 

 국가권력자와 이에 빌붙어 살려는 사람들에게 폭력은 당연한 것인데, 이에 대해 “강자는 폭력을 행하지 말고 약자는 강자의 폭력에 고통받지 않고 서로 공존하고 도우면서 평화롭게 살자.”고 외치는 것은, 결국 국가권력자에 빌붙어 살려는 사람들에게 국가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런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려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는 말이 있듯이, 국정 교과에서 한국 역사의 정체성과 홍익인간사상을 재확립하고 한국 역사의 정체성과 한민족의 정체성인 홍익인간사상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한 세대가 지나면 전제(專制)와 민본(民本), 당파(黨派)와 당파(黨派), 반일(反日)과 친일(親日), 반공(反共)과 종북(從北), 독재(獨裁)와 민주(民主), 보수(保守)와 진보(進步) 등 긴 세월 동안 계속되어온 한국사회의 병폐를 제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우리 사회에 헬-조선,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말이 있는데, 둘 다 망국의 역사를 쓴 조선을 비하해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조선에도 정도전의 민본사상, 세종대왕의 치세, 정약용의 목민심서, 동학의 인내천, 동학운동의 보국안민 등처럼 강자의 폭력을 없애고 약자의 고통을 없애 국가권력층과 국민들이 함께 잘 살기를 도모했던 홍익인간사상을 가진 인물들과 시기가 있었다. 즉 한 시대의 역사나 철학사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고, 이에 의해 양극화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을 통하여 역사를 바로 보는 눈과 국민의식의 정체성 회복을 이루어 양극화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강 작가가 작품에서 꿈꾸었던 “① 강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 ② 약자의 고통에 대한 연민 ③ 평화로운 삶을 바라는 염원”이 이루어질 것이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이런 양극화로 인한 한국사회의 병폐 또한 사라질 것이며, 그래야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경제 발전으로 이룬 한국사회의 첫 번째 도약에 이은 한국사회의 제2의 도약이 시작되어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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