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제3편. 영웅시대의 신과 영웅들
영웅시대는 치우환웅이 다스렸던 구려 한국 시대의 말기와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한국고기에 의하면 치우환웅이 다스리던 시대의 말기인 고조선 시대의 앞의 영웅시대에는 구려 한국시대와 고조선 시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신과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고조선 시대를 존재하게 한 고조선 시대 전기의 신과 영웅들로서 중국신화에는 물론 한국고기에도 등장하여 한민족과 중국민족의 구분을 헷갈리게 하는 신과 인물들이고, 따라서 이들이 구려 한국시대의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고조선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조선 시대와 함께 소개하는 것이다.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영웅시대에는 약 47명의 단군들이 수많은 선인들로 구성된 선비집단과 함께 약 2,000여 년간 다스린다.
① 유호환웅(有扈桓雄)
유호환웅은 한국고기에만 등장하는 신이다. 단군왕검과 같은 연배나 하나 위인 웅녀의 연배의 인물로 유호씨(有扈氏)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받든 신을 유호환웅으로 해석하였다.
유호환웅의 계보는 위로는 고시씨(高矢氏)에서 유인환웅(유인씨, 수인씨)과 유소환웅으로 나누어지며, 유인환웅에서 유호완웅의 계보가 생겨나 유호씨로 이어지고, 유소환웅에서 치우환웅 즉 치우씨와 단군왕검으로 이어진다.
② 전욱고양(顓頊高陽)
전욱(顓頊)은 중국신화에서 오제(五帝) 중 하나로 나오는 신격화 된 영웅으로, 사기 오제본기에서는 세본을 참조하여 황제의 손자로 나오고, 산해경에서는 황제의 증손자로 기록했다.
즉 사기에 의하면 황제의 아들이 창의(昌意)이고, 창의와 촉산씨의 딸인 창박 사이에서 난 아들 혹은 손자가 전욱이라는 것이다.
전욱이 고양씨(高陽氏)로 불리는 것은 처음에 고양(高陽)에서 나라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하며, 제구에 살았다고 한다.
산해경에 의하면 “전욱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인 창의는 하늘나라에서 죄를 범해 인간세계로 쫓겨나 약수에서 살았으며, 그곳에서 한류를 낳았는데, 한류는 생긴 것이 목이 길고 귀는 작으며, 사람의 얼굴에 돼지 입을 하고 있었고, 몸은 기린 같았는데 다리 두 개가 한데 붙어 있었으며 발은 돼지의 발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한류가 요자씨의 딸 아녀를 아내로 맞아 낳은 아들이 바로 전욱인데, 생김새 또한 자신의 아버지인 한류를 닮았다.”고 한다. 즉 산해경에 따르면 전욱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는 창의 혹은 한류이고, 한류의 아들이 전욱이며, 따라서 전욱은 창의의 아들 혹은 손자가 되는데, 창의는 하늘나라의 신으로 황제의 아들 혹은 손자가 될 수 없다.
한편, 사기에 의거하면 전욱은 하나라를 건국한 우임금의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우임금은 한국고기에서 고조선의 사도인 유호씨의 아들로 단군 임검과 같은 연배이니, 전욱은 우임금의 할아버지가 아니고 여기에 산해경의 내용을 더하면 전욱은 황제의 자손 역시 아니다. 즉 전욱은 한민족이나 중국민족의 선조가 아닌데, 만약 사기나 산해경이 유호씨나 치우환웅을 창의로 바꾸었다면, 전욱이 유호씨의 아들인 우임금의 할아버지가 되어 한국고기의 기록과 일치하고, 결국 전욱은 한민족의 선조가 된다.
전욱은 산해경에 따르면 황제가 잠시 왕위를 물려주었을 때 그가 한 정치는 너무나도 가혹했는데, 인간과 신들의 구별을 위해 하늘과의 유일한 통로를 파괴해 하늘과 땅을 끊는 절지천통(絶地天通) 행위를 벌여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아 버렸다. 또한 공공(共工)이라는 자와 제위를 놓고 다투었는데, 공공의 힘이 넘쳐 불주산(不周山)에 서 있던 천주(天柱)를 부러뜨렸고, 이 때문에 하늘은 북서로 기울고 일월성신은 북서를 향해 운행하게 되었다.
반면, 세본의 서술을 따르는 유가 계열 책에서는 그렇게까지 폭군으로 그려지진 않고, 오히려 현인에 속한 인물로 그려진다.
같은 오제인 소호 금천씨가 동방 바다 바깥에 새들의 왕국을 세울 무렵에 당시 어린 시절의 전욱이 그곳에 놀러 갔고, 그때 그는 10살의 어린 나이에 숙부인 소호를 도와 국정을 돌봤을 정도로 현명했다고 한다.
전욱이 어른이 되자, 중국으로 다시 돌아와 북방의 천제가 되었다고 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 그가 이르는 곳에 짐승들마저 꼬리를 살살 짓고, 나무도 가지를 설레며 반겨 맞았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천하를 잘 다스렸기에 명군으로도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다른 전설상의 천자처럼 고결한 인간으로 묘사가 되며, 사기에 의하면 제사를 잘 거행한 군주로 묘사되어 "인품은 고요하고 그윽하며 항상 심모를 갖추고 있다."고 전한다.
전욱은 중국사서에서 선대(先代)인 창의가 하늘나라에 살았다는 점에서 북방상제로 그려지는데, 사기에서 전욱이 단군 임검과 같은 연배인 유호씨의 아버지로 그려지는 점, 전욱이 유가에서 현인으로 그려지는 점, 전욱을 보좌한 신인 우광이 해신이자 풍신이자 전염병의 신이고, 주광의 아버지 우괵이 동해의 해신인 점 등의 특징이 있다. 이에 의하면 전욱은 한민족의 시조신(始祖神)인 치우환웅과 닮은 점이 많고, 전욱의 선대인 창의는 치우환웅의 하늘에서의 이름인 유인 환웅과 닮은 점이 많다.
③ 제곡고신(帝嚳高辛)
제곡고신은 사기에 의하면 황제의 증손으로 등장하는 영웅이다. 즉 황제의 아들이 현호이고, 현호의 아들이 교극이며, 교극의 아들이 고신(高辛)이다. 현효로부터 교극까지 모두 자리에 오르지 못하다가 고신에 이르러서야 제위에 올라 제곡(帝嚳)이라 하였는데, 전욱 집안의 자손이기도 하다.
제곡은 첫째 부인 강원(姜原)의 아들 기(棄)의 후손이 주(周)나라를 세우고, 둘째 부인 설(契)의 후손인 탕이 상나라를 세우며, 셋째 부인 경도(慶都)의 아들 방훈(放勛)이 요를 세우는 등 중국 한족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제곡이 한민족에 속하는 전욱 집안의 자손이 되면서 중국 한족과 한민족의 족보가 헷갈리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나라의 시조가 된 강원의 아들 기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임신되어 낳은 아들이라는 사실로, 이에 의하면 주나라의 시조 기는 제곡의 아들이 아닌 거인의 아들인데, 거인에 해당하는 가장 합당한 인물로 전욱을 둘 수 있다.
만약 제곡고신이 전욱의 아들이 아니라면, 현호-교극-고신(高辛)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현호와 창의는 형제로 다른 인물이 되는데, 강원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제곡은 현호의 손자이자 교극의 아들로 족보상으로 황제-현호-교극-제곡으로 이어져 중국민족이지만, 전욱의 삼촌 혹은 형제로 한민족의 방계인 동시에 중국민족의 직계가 된다.
④ 웅녀(熊女)
유인환웅 즉 고시씨의 직계 후손인 유소환웅과 웅씨(熊氏) 계보의 방계 후손인 소전의 여형제 사이에서 난 손녀로 추정되는 인물로, 단군신화에서 곰에서 인간이 된 후 치우환웅과 혼인하여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어머니가 되는 여성 성웅(聖雄)이다.
⑤ 단군왕검(BC 2333년 ~ ?)
단군왕검은 유소환웅 자신 혹은 아들이자 아바타에 해당하는 신인 치우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인류 최초의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신교도(神敎道)와 신교도의 가르침인 신교(神敎)와 수행법인 선도(仙道)의 창시자이며, 신교도 나라 고조선을 세운 세계 최초의 선각자(先覺者)이며 성웅(聖雄)이다.
흔히 단군왕검의 재위 기간으로 알려진 BC 2333년 ~ BC 425년은 단군으로 불린 모든 인물들의 재위 기간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단군왕검이 창시한 신교도는 종교라기보다는 하느님(천신, 天神)을 신앙하면서 홍익인간의 도(道)를 추구하는 종교적 성격의 수행집단으로 볼 수 있다. 무릇 종교라는 것은 신(神)이 최상위가 되어야 하는데, 단군신화에서는 신(神)이 인간으로 내려와 홍익인간이 되어 인류를 구하고 세상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선도에 입문한 사람을 선인(仙人)이라고 하고, 선인 집단을 선배(仙輩, 先輩)라 하며, 선배의 우두머리를 단군이라 하는데, 현대에 신교도는 신선도(神仙道) 혹은 선도(仙道)라고도 하고, 신교도의 교리(敎理)였던 신교(神敎)는 홍익인간사상과 대종교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고, 신교도(선도)의 수행법인 선도(仙道)는 참선· 단학· 단전호흡· 기공법· 태껸· 활법· 선무도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조선 멸망 후의 신교도 선인들의 행적은 크게 3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로 속세를 떠나 선승(禪僧)으로 살며 마음과 무공을 닦는 무인(武人), 둘째로 속세에서 삶의 도리를 가르치는 도인(道人), 셋째로 세속과 선계의 중간에서 점(占)을 치는 무인(巫人)이 있고, 특히 도인의 길을 걷는 사람을 도사(道士) 혹은 사도(使徒) 혹은 사인(師人, 스승)이라고 한다.
⑥ 요임금(당왕, 唐王: 재위 BC 2145년 또는 BC 2357년 ~ BC 2055년 또는 BC 2267년): 요임금은 단군왕검과 같은 시기에 왕권 국가 당나라를 세워 90년간 다스린 후, 118세에 죽었다고 전해지는 영웅이다.
⑦ 유호씨(有扈氏: ?~?)
단군왕검 시대의 선인이자 유호환웅의 후손인 유호(有扈)를 유호씨라 하는데, 유호씨는 단군왕검의 스승이자 고조선의 정신문화를 서방의 동서양으로 전파했던 성웅으로, 구약성서의 여호와로 추정되는 신격의 인물이다. 유호를 유호씨라 하는 것은 유호 성씨의 시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⑧ 단군부루(재위: BC 2100년~BC 2000년?): 단군왕검의 아들이자 고조선의 후계자로, 태자 시절 창수사자(蒼水使者)로 불리며 순임금 시절의 대홍수 때 태자였던 우(禹)의 치수를 도운 인물로 한국고기는 물론 중국사서 산해경(山海經)에도 등장하는 성웅이다.
⑨ 순(舜)임금(당왕, 唐王): 순임금(?~?)은 유호씨의 아들로 이름은 유순(有舜)이고, 요임금의 뒤를 이어 당(唐王)나라의 왕이 된 영웅이다.
⑩ 우(禹)임금(하왕, 夏王): 우임금(재위: BC 2100년경 ~ BC 2000년경)은 유호씨의 아들이자 순임금의 형제로 이름은 유우(有禹)이며, 태자 시절 치수에 성공하여 순임금의 뒤를 이어 당나라의 왕이 된 후, 국호를 하(夏)나라로 바꾼 인물이다.
⑪ 탕왕(湯王, 재위: BC1600년 ~ 기원전 1589년)
탕왕의 이름은 성탕(成湯)으로, 중국 최초의 전설상의 왕조인 하(夏)왕조의 우임금과 계왕(啓王)의 뒤를 이은 걸왕(桀王)을 물리치고 상(商)나라를 건국했던 영웅이다.
상나라는 원래는 실존이 의심되었으나. 1899년에 은(殷)의 갑골문이 발견되어 세상에 상나라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자들 대부분이 "성탕이 하나라 왕조의 걸왕(桀王)을 폐사시키고 세운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⑫ 무왕(武王, 재위: BC 1046년 ~ BC 1043년)
무왕(武王)의 성(姓)은 희(姬)요 이름은 발(發)이었는데, 문왕(文王)의 아들로 은(殷)의 주왕(紂王)을 멸망시키고, B.C. 1,122년경에 서안(西安) 부근의 호경(鎬京)에 중국 최초의 고대 왕조 국가 주(周)나라를 세워 창업 군주가 되었던 영웅이었다.
문왕과 무왕의 시조는 고공단보(古公亶父)로, 성이 희(姬)이고 이름은 단보이며 고공은 벼슬 이름인데, 주나라가 세워진 이후 태왕(太王)으로 추증되어 주나라의 시조가 되었고, 전설 상의 군주인 황제(黃帝)의 35대손이며, 중국의 농업의 신으로 신농(神農)과 함께 숭배되고 있는 후직(后稷)의 12대 손이다. 따라서 무왕은 황제의 후손인 동시에 후직의 후손이다.
⑬ 강태공(姜太公: ?~ BC 1072년): 강태공의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으로 강상(姜尙)으로 부르고, 주나라 무왕의 창업을 도운 영웅으로 이때의 공으로 제(齊)나라를 세웠는데, 무왕의 아버지 문왕이 간절한 바람으로 아들 무왕의 사부로 모셨다고 하여 태공망이라고도 한다.
⑭ 기자(箕子, 재위: BC 1126년~BC 1082년)
기자는 주(周) 무왕이 왕이 되었을 조선의 왕으로 봉해졌는데. 한국 고기에서는 기자조선의 군주로 나오는 영웅이다.
기자는 그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영웅인데, 달기의 이야기로 유명한 폭군 주왕(紂王:? ~ BC 1046)의 제부(諸父) 또는 서형(庶兄)으로 알려져 있고, 주왕의 숙부로 소사(少師)라는 직책에 있었던 비간(比干)과 함께 왕의 실정을 간언했던 충신이었으나, 주(周) 무왕이 주왕을 몰아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바로 조선왕으로 봉해지는데, 조선왕으로 봉해졌다고는 하지만 거꾸로 선정의 방안을 묻는 주 무왕을 홍범 구주(洪範九疇)로써 교시하는 등 우위적 입장도 있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⑮ 신후(申侯)
신후는 주나라의 마지막 왕인 폭군 유왕의 아내인 신(申) 황후의 아버지이자 유왕의 장인으로, BC 771년경 주왕을 몰아내고 삼한춘추전국시대(三韓春秋戰國時代)를 연 영웅인데,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신 황후를 몰아낸 주의 마지막 왕후로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유명한 포사(褒姒)이다.
이어지는 삼한춘추전국시대에 춘추오패(春秋五覇)와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불렸던 제(齊)·진(晉)· 초(楚)· 오(吳)· 월(越)· 연(燕)· 위(魏)· 진(秦)· 한(韓)· 조(趙) 등의 국왕이 있었고, 패(覇)와 웅(雄)이라는 글자를 붙여 영웅시되었으나, 이들은 실패한 영웅으로 신후가 열어 놓은 열국 시대에 왕권을 탐해 수많은 전쟁으로 백성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던진 인물들이다.
⑰ 여불위(呂不韋, BC ?년 ~ BC 235년)
여불위는 중국 전국시대의 상인이자 정치가로서, 한(韓)나라의 거상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장사를 해서 거금을 모은 대부호였다. 그는 특히 수완이 뛰어나고 이재에 밝았는데, 소양왕의 태자 안국군(安國君)의 아들 영정(嬴政)을 우연히 만났고, 이에 당시 자신의 첩이었던 미인 조희(趙姬)를 영정에게 바치며 접근하였으며, 안국군이 왕위에 올라 영정이 태자가 되자 조희를 돌려보냈고, BC 247년 영정이 왕위에 올라 어렸던 영정 대신 모태후(母太后) 조희가 섭정하자, 상국(相國)이 되어 중부(仲父)라는 칭호로 불리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당시 세간에는 영정이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영정이 모태후와 여불위 사이에서 난 아들인지, 여불위와 조희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후에 여불위는 영정에게 제거당했으니, 영웅이라기보다는 난세의 간웅이었다.
⑲ 진시황(秦始皇, BC 259년~ BC 210년)
진시황은 진왕 정(政)이 삼한춘추전국의 군웅들을 통합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대진국(大秦國: B.C.221~B.C.210)을 세워 시황제(始皇帝)로 등극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시황은 영웅이지만 분서갱유(焚書坑儒)· 아방궁(阿房宮)· 만리장성(萬里長城)· 병마용갱(兵馬俑坑)· 불로초(不老草) 등의 악행(惡行) 으로도 유명한 인물인데, 분서갱유에 의해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 역시 막을 내린다.
진시황 사후 진나라는 조(趙)나라의 먼 왕실 자제였던 환관(宦官) 조고(趙高)에 의하여 빠른 속도로 멸망하였다.
⑳ 항우(項羽, BC 232년~BC 202년)
항우는 전국시대였던 기원전 232년 초나라 하상(下相)에서 태어나서, BC 206년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칭하였던 영웅으로, 만인지적(萬人之敵), 패왕(霸王),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등의 고사가 모두 항우로부터 유래되었다.
항우는 BC 202년 12월, 사실상 초한대전의 마지막 대단원이라 할 수 있는 전투인 해하전투(垓下戰鬪)에서 유방에게 패했고, 이 때 항우와 애처 우희(虞姬)가 주고받았다는 항우의 해하가(垓下歌)와 우희의 화항왕가(和项王歌)가 유명한데,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는 해아가에서 나온 고사이다.
⑳ 한신(韓信, ? ~ BC 196년)
한신은 진(秦)나라 때 사람으로, 회음현(淮陰縣:江蘇省)에서 출생하였다는 것 외에는 출생일과 그의 집안에 관한 내력은 분명하지 않는데, 워낙 가난해 밥을 빌어먹을 정도였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 장례조차 치를 수 없었으며, “젊은 시절 바닥에 엎드려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나왔다.” 하여 과하지욕(袴下之辱)이란 고사성어가 생겼을 정도로 최악의 환경이었지만, 유방의 삼군 총사령관인 대장군까지 올라 초한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입지전적인 영웅이다.
㉑ 한 고제(漢 高帝) 유방(劉邦: BC 247(?) ~ BC 195)
유방은 BC 247년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한나라를 세웠던 영웅인데 유방이 세웠던 한나라를 전한(前漢)이라고 한다.
유방은 BC 209년 진승(陳勝)·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사를 일으켜 패공(沛公)이라 칭하였고, BC 206년 항우에 의해 진나라가 멸망하자, 유방은 항우로부터 한왕(漢王)에 봉해졌다.
BC 202년 12월, 유방은 사실상 초한대전의 마지막 대단원이라 할 수 있는 전투인 해하전투(垓下戰鬪)에서 항우의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세웠는데, 한나라를 새운 후 연회에서 “나에게는 소하(蕭何)와 장량(張良)과 한신(韓信) 3명의 개국 공신이 있었는데, 항우는 범증(范增) 한 사람만 있었으면서도 그를 중용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나에게 사로잡힌 까닭이다.“라고 이야기한 삼불여(三不如)가 고사가 되었고, 이 고사는 “인사가 만사이고 인재를 등용하여 잘 활용하는 리더가 성공한다.”라는 사례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㉒ 한무제(漢武帝, BC 156년 ~ BC 87년)
한무제는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영웅이지만, 한국 역사를 한반도로 내몬 원흉이기도 하다.
한무제는 지휘관이었던 곽거병과 위청을 앞세워 흉노족은 물론이고 동월과 남월(베트남), 위만조선과 삼한의 유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정복 전쟁에 나섰고, 이후 서쪽으로도 진출해 정복 전쟁을 이어갔으며, 이때 중국과 서방의 교통로인 비단길(실크 로드)을 개척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BC 111년 남월국을 정복함으로써 광둥, 광시, 베트남 북쪽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BC 108년에는 위만조선의 자리에 현도군과 낙랑군을 설치했으며, BC 60년 서역으로부터 공격에서 로마와의 실크로드 무역을 지키기 위해 서역도호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제1장 제4편. "삼한시대의 신과 영웅들"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