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로 Oct 27. 2024

너는 나의 아픈 손톱

너를 더 이해할 수 있기를

갓난아기 때는 손톱을 자르는 것도 조심스럽다. 살면서 그렇게 긴장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대게 아기가 곤히 잠들었을 때를 노린다. 잠든 아기를 앞에 두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서로 못하겠다고 미룬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손톱 열개를 다 자르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손톱을 자르는 것은 어설프기만 했던 초보 엄마의 사랑이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릴 때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꽤 흔한 일이라고 하는데, 내 아이의 일이 되니 그렇지가 않았다. 자꾸만 아이의 손끝에 시선이 가고, 손톱의 안부를 걱정하게 되었다. 버릇을 없애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제일 먼저 아이를 협박하고 겁을 주는 것.


'손톱을 물어뜯으면 세균이 뱃속으로 들어가서 아프게 돼! 자꾸 손톱을 뜯으면 병원에 가서 주사 맞을 거야!'


쓴 맛이 나는 손톱 영양제도 발라 봤다. 이 방면에서 용하다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다가 손가락에 문어가 생기는 내용의) 그림책도 읽어줬다. 그럼 한 동안 잠시 나아지는 듯해도 결론은 다 실패였다. 금세 또 손톱을 죄다 물어뜯었다. 어쩔 때는 피가 날 때까지 뜯었다. 아이의 손에서 피를 보는 날에는 폭발해 버린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만다. 화를 내는 게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울퉁불퉁한 아이의 손톱을 보면 내 불안이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데 첫째는 어쩌면 나의 아픈 손톱이다. 첫째 아이는 나를 참 많이 닮았다. 그것이 나를 기쁘게도 그리고 슬프게도 만든다. 내 아이는 내 불안까지 닮았다. 애처롭다. 그리고 화가 난다. 답답하다.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이고 어느새 꿈틀거리는 내 우울이 두려워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외면한 채 지적만 앞세웠다. 아이에게 더 큰 불안을 안겨주었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내가 정신과 상담을 다닌 이후로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물론 6살이 된 지금도 손톱 물어뜯기는 진행 중이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주로 손톱을 입에 가져가는 행동이 나타난다.


소파에 마주 앉아 따각따각 손톱을 깎는다. 혹 너의 하루가 불안해서 손톱을 물어뜯어 깎을 것이 없다 해도 좋다. 아기 때처럼 그때의 마음으로 손톱 하나하나 정성을 다한다. 울퉁불퉁해져 버린 손톱을 다듬는다. 손톱이 아닌 아이의 마음을 바라본다. 내 아이의 몸과 마음이 평온하기를 바란다. 혹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괜찮다. 괜찮다. 나는 너를 사랑해. 손톱을 깨무는 너도, 불안한 너도, 엄마는 사랑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



너를 더 이해할 수 있기를. 사랑해. 우리 아들.

이전 08화 남편도 어쩌면 우울증이지 않았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