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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찔레꽃 Oct 23. 2024

이런 취미도 있다우

'군산이우도서(群山二友圖序)' 해석


'고인과의 대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수필 제목이다. 제목부터 곰팡내가 나서 지금 학생들은 제목만 보고도 책을 덮을 것 같다. 당시 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래도 비호감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고리타분한 제목도 그렇거니와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고아한(나쁘게 말하면 괴상한) 말들을 너무 많이 사용해 읽기가 난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섣부르게 '온고지신'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옛것이 그렇게 좋은가? 옛것 좋아하다 뒤쳐지고 나라도 망했던 것 같은데….' 확실히 피가 끓는 청춘이 읽기에 매우 부적절한 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저자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는 나이가 된 지금, 그 글을 읽어보니 청춘 시기와는 다른 느낌과 생각이 든다. 고리타분한 제목은 고상한 제목으로, 고아한 말들은 말 그대로 고아한 말로, '온고지신'은 매우 소중한 가르침이란 느낌과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허, 이거 참 당황스럽구나! 똑같은 글인데 어이 이리 다른 느낌과 생각이 든단 말인가? 


변절자가 된 지금, 나의 취미는 옛 글(한문으로 된) 해석하기이다.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기에 짧은 글도 사전을 뒤적이며 오랫동안 끙끙거리며 해석을 해야 하지만, 이 끙끙거림 자체가 즐겁다. 며칠 전 지역 시민단체에서 주관한 '군산 역사 기행'에 참가했다가 옛 기록물 하나를 사진 찍었다. 왠지 해석이 제법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던 것. 예감이 적중해,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석을 마쳤다. 야호~!



군산이우도서 (群山二友圖序)     


나와 사안(士安)이 군산에서 벗이 된 것은 계사년(1593) 봄이다. 각기 영남과 한양 머나먼 길에서 와 어느 날 저녁 우연히 만나 친해졌는데 난리 중에 함께 고생을 했다. 더불어 지낸 기간은 5년이지만(잘못 계산한 듯싶다. 계사년에서 이 글을 쓴 병신년 까지는 4년이다) 서로 깊이 의지하여 지내 흡사 100년을 함께 함께 지낸 이처럼 의기가 투합하였다. 지난해부터 금년에 이르기까지는 긴 걸상에 이불 하나로 함께 지내 그 마음이 더없이 친밀하고 도타우며, 고검(古劍)을 앞에 두고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아 교분이 아교와 옻처럼 끈끈하다. 누가 지금 사람은 옛사람에 못 미친다고 했던가! 옛날에 친한 친구 사이로 관중과 포숙을 들었다지만 지금엔 나와 사안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내가 사안에게 말했다. “나와 그대는 고향을 떠나 이곳에 기탁해 친구가 되었는데 우정이 돈독하네. 이 우정을 길이 잊지 않을 방도를 생각했으면 싶네. 그대는 시와 그림에 능하니, 청컨대 그림을 그리고 또 시를 지어 첩 두 개를 만든 뒤 각기 하나씩을 소중히 간직하여 평생의 완상품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는가?” 사안이 이에 흔연히 붓을 들어 그리고 지으니, 이름하여 ‘군산이우도(群山二友圖)’라 하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오호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벗 있는 것이 어찌 평범한 일이겠는가? ‘역(易)’에서도 “마음을 함께 하는 이들의 날카로움은 쇠도 끊어낼 수 있다”라며 벗의 소중함을 말했고, ‘시(詩)’에서도 친구 간의 소중한 우정을 찬미하는 ‘벌목(伐木)’ 편이 있으며, 오륜에서도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덕목이 들어 있으니,  벗 사이의 도리란 참으로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군산은 우리가 함께 머물고 있는 고을이며, 그림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그린 것은 고단한 세월을 함께 이겨낸 기상을 나타낸 것이다. 책을 보면서 잔을 들고 있는 것 또한 어찌 부질없이 그린 것이겠는가? 고인의 이른바 ‘술을 들며 글을 논한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하늘이 만약 전쟁의 화란 일으킨 것을 뉘우쳐 다시 평정을 찾게 한다면 각기 이 첩을 소매에 넣고 고향에 돌아가 책상 위에 펼쳐놓고 감상하여 흡사 진짜 상대를 마주한 것처럼 여기게 된다면 머물러 있는 구름을 바라보거나 밝은 달을 보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안에게 그림 그려주기를 청했던 소이이다.     


만력 병신(1596) 늦가을 파징(波澄) 김주(金輳) 쓰다



해석을 한 뒤, 이 그림이 어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보다,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서문의 사실과 다른 내용이 횡행하고 있는 것. 서문에는 이 첩의 그림과 시가 분명 사안(조영)이란 이가 혼자 그리고 쓴 것으로 돼 있는데, 인터넷엔 그림은 사안이 시는 김주가 쓴 것으로 나와 있었다. 아울러 이 첩의 그림은 서문의 내용으로 보면 1596년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인터넷엔 1593년에 완성된 것으로 나와 있었다(이상 아래 사진 기사 참조). 사소한 것이지만 분명 틀린 정보이니, 정정이 필요해 보인다.





조동일 교수가 요즘의 해외여행 문화(구경하고 먹고 즐기기)를 탓하며 해외여행 대신 외국어 공부를 권한 적이 있다. 돈도 안 들고 환경 오염도 줄이고 문화 소양도 높일 수 있는 일석삼조라는 것. 좋은 권유이지만 이 역시 젊은 청춘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나 같은 노땅에게나 어울리는 권유 같다. 마치 저 '고인과의 대화'가 젊은 시절엔 와닿지 않고 나이 든 후에야 와닿는 것처럼 말이다. 노땅 중에도 젊은이 같은 이가 있고, 젊은이 중에도 노땅 같은 이가 있긴 하지만 역시 보편적인 형세는 아니다.


옛글 해석하기는 조 교수가 권한 외국어 배우기에 버금가는 좋은 문화(취미) 생활인 것 같다. 그 자체도 재미있지만 한자 한문 문맹이 된 지금 옛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생기는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공익성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돈도 거의 안 들고(가끔은 관련 책을 사야 하기에 돈이 아주 안 드는 것은 아니다) 환경 오염도 안 시킨다. 하하.


그나저나 '군산이우도'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니 대단히 의미 있는 그림으로 상찬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 그림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갖는 그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누구는 임진왜란을 맞아 피 흘려 싸우고 있는데 고작 피난 생활 중 맺은 우정을 자랑하는 그림이라니, 뭔가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만일 그가 사회에 책임이 있는 지식인(선비)이 아니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 주겠지만, 어엿한 지식인(선비)일진대 말이다. 너무 과한 주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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