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野居)
秋雲漠漠四山空 추운막막사산공 가을 구름 막막하고 사방 산 적막한데
落葉無聲滿地紅 낙엽무성만지홍 낙엽은 소리 없이 온 땅을 붉게 물들였어라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 시냇가 다리 곁에 말 세우고 귀로를 묻노니
不知身在畵圖中 부지신재화도중 아지 못케라, 이 내 몸 그림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늦가을이면 생각나는 정도전의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野居)'. 가을 정취에 함입된 정서를 잘 그렸다. 혁명가에게도 이런 감수성이 있구나, 하는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이 시를 읽으면서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시를 보게 됐다. 인생에서 갈 길 잃은 막막함과 서글픔을 그린 시로 본 것. 첫 구와 둘째 구는 늦가을 풍경을 통해 막막하고 서글픈 상황을 그린 것이고, 셋째 구는 갈길 묻는 나그네를 통해 막막하고 서글픈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며, 넷째 구는 이런 상황과 처지란 자신의 인생 지도에서 현재 어떤 좌표에 있는 것인지를 되돌아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읽은 것이다. 엊그제 초로의 나이에 아내 잃은 친구를 문상하고 왔더니,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친구는... 친구여, 부디 마음 잘 추슬러 길을 잘 찾아 걸어가기를!
* 첫 구의 '운(雲)'은 '음(陰)'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론 '음'이 더 시상에 잘 어울려 보인다. 늦가을 정취를 좀 더 폭넓게 담아낼 수 있는 시어라고 생각 들기 때문. 넷째 구의 '도(圖)'는 원시에서는'그림'이란 의미이지만, 위와 같이 억지 풀이를 한다면 '(인생) 지도'라는 뜻으로 풀이해야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