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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티끌이 버거운 시간을 견디는 방법

by 뇽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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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기는 유난히 더디게 지나간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도


뒤돌아보면 겨우 두 뼘 만큼만 온 것 같은,


그런 시기 말이다.



그럴 땐 왜 그렇게 시간이 가지 않는지,


버거운 일이 삶에 닥칠 수록


어떤 시간들은 진득하게 움직였다.



우주에서 보면 나는 한 명의 티끌이라는데,


그 티끌의 티끌 같은 일이련만,


나 같은 티끌에게는


티끌의 티끌 같은 일이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지 모른다.



그 티끌의 티끌에게 자주 졌지만,


어쩔 때는 오기가 가득차서


바득바득 이기려고 노력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중얼거리는 말이 있었다.






이게 내 일상을 파괴하게 두지 않을 거야.


나는 평소처럼 살겠어.






버거운 일은 늘 예상치 못하게 오고,


해결되는 시점도 우리가 정할 수 없다는 걸


살면서 몇 번이나 배울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이해인 수녀는


“삶은 끝내 견디는 쪽의 편을 들어준다”고 적었다.



견딘다는 건 특별한 힘이 아니라


그날의 삶을 하나씩 해내는 일이었다.



문제가 사라지지 않은 채로


밥을 먹고, 일하고, 잠들고,


작은 루틴을 쌓아가는 나날들이


결국 나를 데리고 다음 계절까지 가주었다.



그런 날들 덕분에


무너질 틈이 없어서 버틴 순간들도


운 좋게 있었다.



‘언젠가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숨을 고르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언젠가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그 기다림 속에서


정작 내 일상이 흐려지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요즘에는 힘든 시기일수록


더 소소한 일에 몸을 싣는다.



먼지가 떨어져있는 거실 바닥에 청소기 돌리기


밀리지 않게 때마다 설거지하기,


쓰레기 봉투가 몇 개씩 쌓이지 않게


출퇴근 길에 다녀오기,


자기 전에 바디로션을 듬뿍 바르기 같은 거 말이다.



시련이란 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간을 외면하지 않으면


언젠가 결이 바뀌어 있는 순간이 온다.



예전에는 그 말을 믿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라는 말.



이제는 안 믿는다.



시간이 대신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낸 내가


조금씩 해결해가는 거였다.



그게 바로 우주의 티끌 같은 내가 찾은


티끌의 티끌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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