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현이(가명)는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다.
평소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산소포화도가 80% 초반밖에 나오지 않는다(대개 일반적으로 산소포화도는 95% 이상을 유지한다). 산소를 운반하는 심장 펌프의 기능이 떨어져서 손발의 말단까지 혈액순환이 잘 되지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입술에도 혈액공급이 되지 않아 입술이 주로 파랗다. "청색증"이라고 일컫는다.
찬현이는 어릴 때 한번 전신마취를 해서 전체 치과치료를 했다. 이제는 2학년, 유치는 대충 상황이 종료되었는데 새로 나온 영구치가 말썽이다. 나오자마자 하나씩 썩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더 이상 둘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재워서 하는 치료를 할 수 있는 나이도 지났고, 레진치료를 하자고 또 전신마취를 하기는 그래서 하나씩 달래가면서 치료하기로 했다.
찬현이도 분명히 진료실에 들어올 때까지는 잘해보리다 하고 마음을 먹고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참 치과의자라는 것은 치과 진료실이라는 것은 아무리 큰 도라에몽이 치아도 없는 채로 칫솔을 들고 웃고 있어도 무서운 곳이다. 치아가 없는데 칫솔을 들고 있어서 더 무섭나. 어쨌든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서움이 생기는 곳이다.
찬현이는 꽁꽁 싸매고 울면서 하면 산소포화도가 더 떨어져서 위험할 수 있다. 반드시 치료에는 찬현이의 협조가 필요했다. 엄마와 찬현이의 실랑이가 시작된다. 오늘 하기로 약속했지 않았냐는 엄마와 그냥 잠자면서 하겠다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버티는 찬현이와의 대치가 시작된다.
시간이 간다.
대화를 하고 다시 들어오신다. 그래도 찬현이는 마음을 먹기가 어렵다.
시간이 간다.
엄마도 힘들다. 다른 사람들 눈치도 보인다. 애원과 협박이 계속된다.
찬현이의 마음도 힘들다. 해볼까 와 겁난다의 마음이 반복된다.
내 마음도 힘들다. 기다림의 시간은 아이들마다 다르다. 어떤 아이들은 그냥 강제로 시작해서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 기다림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좋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충분히 기다려주면 자신의 의지를 내기도 한다.
내 마음속에도 더 기다려? 그냥 시작해? 두 가지 마음의 작은 전쟁이 시작된다.
그 결정의 단서는 아이의 작은 신호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 눕지는 않지만 울음소리는 잦아든다. 계속 울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협조하기는 어렵다.
감정이 한쪽에서 한쪽으로 넘어가는 "겸연쩍은 시간"이다. 감정을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식지는 않는다. 찬현이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사그라들고 있다. 약간의 잔 분노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개 더 자극하지 않으면 사그라든다.
그리고 그 "겸연쩍은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진료실 의자에 누워서 치료를 받을 준비를 한다.
영겁의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모든 감정에는 그 변화의 시기. "겸연쩍은 시간"이 있다. 화를 내다가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다가 아픔이 사라졌다고 바로 웃음이 나지는 않는다.
아이라고 그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닐 테다.
오늘도 나는 그 겸연쩍은 시간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