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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현

적당히 멋진 글

by 오수현



잠들기 한 시간 전, 옅은 여백줄을 남긴다. 내일은 간만에 일찍 일어나는 날이다. 사실 여덟 시면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지만 낮밤이 바뀐 올빼미에겐 적잖이 부담스럽다. 지금부터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시간이다.


너무 공을 들이지 않고 적당히 멋진 글을 완성할 순 없을까.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그래서 언젠가 그랬듯 누군가 내 취미를 물어보면 당당히 ‘글쓰기’라 대답할 수 있었으면. 하루동안 묵묵히 제 몫을 감당한 내 감정에 적당한 이름표를 달아주고, 혹 운이 좋은 어느 날엔 다른 누군가에게 비슷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언젠가.


벌써 두 해를 가득 채웠다. 글쓰기가 조금 더 편해진 후에 다음 작품을 시작하겠노라 결심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그리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매대 위 가지런히 놓인 내 책들을 마주하는 일이 이제는 제법 민망하다.


지극정성이라도 밑 빠진 독을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간의 찝찝함을 끌어안은 채 이제는 흰 쌀죽이라도 끓여보지 뭐. 글을 쓰는 게 숙달돼서 적은 시간 내 멋진 글을 쓸 수 있으면 글쓰기 자체도 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되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작업상 선순환도 구축할 수 있겠지 아마도.


딱 한 시간을 채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썩 괜찮은 글이 나왔다. 오늘 짝사랑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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