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대충 털어낸 뒤
아내가 끓여준 고깃국 냄비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뭉쳐있던 마음이 녹는다.
두껍게 썰린
무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까다로운 남편 놈 입맛을 맞추느라
한 번 썰어도 될 것을
두 세 번 더 하고서야
칼질이 마무리된다.
내 엄지손톱만 한 무를
입 속에서 녹여낼 때마다
그녀의 조용한 배려가
간간히 맛을 낸다.
책상일이 피곤하다고 하나
엄동설한에 아이를 밴
여인의 출퇴근 길보다 더할까.
현관문이 열리면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내 품에 와락 안겨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묻고선
저녁 식사 후엔
또 묵묵히 남편 놈을 위해
내일 점심을 준비한다.
아, 내 글솜씨가
그녀 고깃국에 절반만 따라갔으면!
서툴렀던 그녀 칼질이
단 한 사람을 위한 정성으로
숙달된 것처럼
나의 펜 끝도
단 한 사람을 위한 정성으로
부드러워졌으면.
고깃국 한 사발을
바닥까지 비워냈다.
설거지를 한 뒤
오후 작업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