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믿음
처음 후배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 마음속엔 꽤 큰 갈등이 있었다. 내가 해오던 일, 내가 익숙하게 처리하던 과제를 과연 후배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작은 실수라도 생기면 업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배는 아직 업무 경험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내가 그 일을 직접 해왔다는 '나만의 방식'이 있었다. 혹시 후배가 내 방식과 다르게 처리하면? 혹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불안감 때문에 후배에게 일을 온전히 맡기는 건 쉽지 않았다. 내 손에서 떠나는 순간,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일이 내 손에서 벗어나면,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었다. 결국, 후배도 성장해야 하고, 나도 새로운 과제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작은 실수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결심으로 후배에게 처음으로 중요한 업무를 맡겼다. 서류 하나를 넘기면서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후배를 믿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후배는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 더 잘 해냈다. 물론 작은 실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보고서의 숫자가 틀린 부분도 있었고, 빼먹은 자료도 있었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생기면 그때마다 내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후배는 실수할 때마다 스스로 그 문제를 인정하고, 어떻게 수정할지 적극적으로 찾아갔다. 나는 그런 후배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배움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날수록 후배는 점차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꼼꼼하게 챙기기 시작했고, 작은 실수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동안 후배가 쌓아온 성과들을 보며 내가 처음 느꼈던 불안이 무색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후배는 실수에서 배운 경험들을 자신의 역량으로 바꾸며 점차 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실수마저도 후배의 성장 과정에 중요한 한 걸음이라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됐다.
돌이켜보면, 내가 후배에게 맡기지 못했던 이유는 후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일을 넘기는 순간의 불안은 사실, 내가 익숙했던 업무를 놓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후배는 배워나갔고, 나 또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는 안다. 후배에게 업무를 맡긴다는 것은 단순히 내 일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성장을 위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믿음이란, 결국 성장의 시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