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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 수박고르기 지옥 탈출기

이 소리를 아십니까


이 소리도 아닙니다

ㅇㅇ 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40여년 전에 유행하던 어느 목감기약의 광고이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장을 보러 갈때

식구들 모두 내보내고 평일 오전에

코스트코에 혼자 일찌감치 갔었다.

 늘상 7시 30분에 주차장에 도착하여 30분은 잠깐 졸다가 오픈하자마자 입장을 했었다.

조금이라도 신선한 과일과 고기, 생선을

사기 위함이라고 포장해 보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장보는게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늦으면 주차장이 꽉 차고

좋은 물건을 고를때 경쟁률(?)이

높아지는게 몹시 피곤했다.


코스트코는  가성비 좋은  생수사러 갔다가

그 생수값의 10배도 훨씬 넘는 금액의

장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생수에 낚이는 셈이다

집에 생수가 남아 있어도

물 사러간다고 선포하고 가서

물은 안사고 올 때도 있다.


코로나 시대가 들이닥치면서

남편의 재택근무가 늘어났고

나는 세 끼 밥을 차리는게

처음엔 몹시 언짢았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 퇴직후의

우리 부부의 삶을 미리 체험하는 기회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좋은 점은 평일날 남편이

장보기에 동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트 밀어주고, 무거운거 다 들어주고,

차에 실어주고, 내려주고, 주방까지 옮겨준다.


바로 어제!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한 남편과

함께 코스트코에 갔다.

매번 갈 때마다 예상치 못했던 것에

꽂히기도 하는데

어제는  야채코너로 접어들기 전에

"  비키세요! 위험해요."  라는

직원의 말에 감각적으로 내 몸은 반응하고 말았다.

눈앞에서 옮겨지고 있는  새파란 동글이들.

그렇다. 새로운 박스에서 새로운 수박들이

굴러 나와 쌓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 두근거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수박들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남편도 나와 함께 두드리기 시작했다.

" 음... 이 소리가 아닌데... 이 소리도 아니야.".제법 전문가스럽게 말하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소리의 기준이 있느냐고...

난 대답했다. 그냥 이거다 싶은 소리가 있노라고..


대부분 10개쯤 두드리면

그 중에서 두어개는 다른 소리가 느껴지고

그들중 하나를 집어오는데

어제는 그 많은 동글이들이

" 메롱" 하듯이 모두 비슷한 소리를 내는것이다.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흘러

뭐라도 골라잡아야 남편이 나를

근사하게 여길듯 하여 고하는데

우연히 수박의 아랫면이 눈에 들어왔다.


( 수박비교를 위해 무거운 수박을 들어준

남편에게 심심한 감사를 보낸다.)


바로 이렇게 동그란 부분이

작은게 있고 큰게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소리가 아닌

이 동그라미의 크기에 따라 고르기로 했다.


큰 것이 맛있을지

작은 것이 맛있을지 고민다가

마음가는대로 최대한 작은 것을 골랐다.

고르고 보니 줄무늬도 선명하고 비뚤지 않아

꽤 마음에 들었다.

과연 달콤할까? 제대로 골랐을까?

고민하며 집에 오자마자 쪼개어 보니....



홍해가 갈라지듯 쫙 소리가 나면서

엄청 빨갛고 달콤한 과육이

가득한 녀석이었다.


사실, 29년 주부생활에

수박고르는 요령은 없었다.

수십개를 두드려서

그냥 통통통 소리가 나면

둥둥둥, 탁탁탁  소리보다 맛있게 느껴서

그걸 골랐었다.

그런데 나만의 요령이 한가지 생긴셈이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약간의 고통은 따른다.

두드리면 손가락이 아프고

굴리는건 팔이 아프다.


아무 잘못없이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두들김을 당하는

수박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나만의 방식으로

계속 도전해 보기로 한다.


오늘 아침

나는 그 수박을 먹고있다.

역시 잘 고른듯 하다.

수박두드리기와 동그라미 크기 확인하는 것을

짜증내지 않고 함께 해 준

남편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 내가 오늘 선곡한 음악은

어제 내가 수박 고를때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여 골라봤다.^^)


오늘도 굿모닝^^


https://youtu.be/1NuP9NX2V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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