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 아다지오.
*이번 화는 소제목에 쓰여있는 클래식 곡을 먼저 감상해보시길 추천합니다.
1.
한국에 있는 동안 매일같이 병원에 갔다. 시차를 성큼 앞질러 동생에게 왔지만 나는 그 아이를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기 때문이었다. 2주. 연차를 낸 엄마와 나는 면회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붙어 있었다. 웃음도 눈물도 전혀 없는 메마른 표정으로 우리는 동생을 볼 시간만 기다릴 뿐이었다. 밥때가 되어 식사를 해도 밥알이 혀 사이로 굴러다니기만 했다. 아버지는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숨이 막힐 만큼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우리 집엔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바빴던 날들이었고 우리는 앞이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바이러스일 수도 있어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척수에 바늘을 넣어야 해서 좀 위험한 검사인데 동의하시겠어요?"
"이ㅇㅇ님, 보호자님이시죠? 열이 안 내리네요. 계속 해열제를 주사하고는 있는데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요."
"명확한 원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어서."
면회를 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는 말들만 들렸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도로시, 동생은 괜찮은 거야?"
"아니, 상황이 많이 안 좋아..."
"예정대로 돌아올 수는 있는 거야?"
"아무래도 출국을 미뤄야 할 것 같아."
...
"지역 매니저랑 얘기를 했어. 일주일 정도는 무급으로 휴가처리해줄 수 있으니까 일단 기간은 그렇게 연장할게. 괜찮지?"
"응. 고마워."
일주일을 더 미뤘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머무는 기간 3주. 그것도 석연치 않았다. 동생은 누워있고, 언제 괜찮아질지 모른 채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별다른 수가 없으니 마음만 답답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 사실 하나에 인간의 존재가 이렇게 나약하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만약에 계속 아프면 어떡하지. 돌아가서 귀국할 준비를 해야겠지...?'
그때부터 나의 런던 생활이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동생에게 미안할 만큼 갑자기 아쉬움의 파도가 내게 밀려들어왔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첨벙거렸다. 아쉬워. 아직은 정리하고 싶지 않아. 나 더 있고 싶어. 런던에 있고 싶어. 1년 만에 갑자기 들어온 한국에서, 아픈 동생과 런던을 번갈아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했다. 런던에 있던 시간들이 갑자기 낯설게 기억되고 마치 한 여름밤의 꿈같았다. 아쉬웠지만 슬퍼하고 싶진 않았다. 난 언니니까. 동생이 건강한 게 더, 훨씬 더 중요하니까.
2.
세상에 기적은 존재할까? 아무래도 기적은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하늘도 우리가 불쌍했는지 놀랍게도 출국을 앞둔 바로 며칠 전, 동생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이 또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그 아이가 괜찮아지는 게 보이니 나는 한시름 놓고 그제야 마음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출국 전날 마지막 면회 시간, 나와 동생은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언니 갈게. 회복될 때까지 잘 해낼 수 있지? 괜찮을 수 있지?>
나의 눈빛에 동생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응. 내 걱정하지 말고 가.>
그리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해 런던으로 건너갔다. 다시 돌아온 런던. 그곳은 이미 반짝이던 여름빛이 사그라들던 참이었다. 다행히 아예 사라지진 않았다. 8월 중순. 예약해둔 코펜하겐행 비행기를 취소하고 저물어가는 런던의 여름을 홀로 보냈다. 나는 모든 게 다 괜찮았다. 동생이 괜찮아진 것만으로 모든 게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앞으로 런던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마침내 한 달 만에 되찾은 나의 런던 일상. 아주 오랜만에 집 앞 작은 마트에서 파는 1파운드짜리 아메리카노와 바게트를 아침으로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래저래 고민하기에도 아깝다 하루가. 욕심 없이 그냥 살자. 감사하며.'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던 내게, 하늘은 새로운 기회를 주는 듯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살아보라고.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게 살면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될 거라고. 너무나 다행이었다.
3.
런던에 돌아온 후, 다행히 예약해두었던 BBC프롬즈(매해 여름마다 런던에서 열리는 클래식 페스티벌.)를 갈 수 있었다. 클래식을 좋아해서 꼭 가고 싶던 곳이었다. 게다가 내가 예약했던 날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을 하는 날이었고 나는 잔뜩 기대가 되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라니. 그리고 생각해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보는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홀 안을 꽉 채우는 악기들의 선율은 그야말로 풍성한 하모니였고 나는 그 소리 안에서 눈을 감은 채로 몇 시간을 만끽했다. 다음 곡, 그다음, 순서는 흘러가고 마침내 마지막 곡. 익숙한 클라리넷의 멜로디가 귀에 들어왔고, 프로그램의 곡 리스트도 잘 모르고 있던 나는 즉각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 곡이 어떤 곡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친밀하게 위로했던 3악장.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비하인드 스토리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곡들이 연이어 혹평을 받으며 다시는 작곡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큰 슬럼프에 빠져 고통스러워했지만 그러나 끝내 그 긴 터널을 빠져나왔고, 끝내 새로운 곡들을 발표했다. 좌절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후, 그가 만든 선율 중 하나가 바로 교향곡 2번. 그리고 그는 작곡가로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 아름다운 선율은 나를 따뜻하게 도닥였고 나는 나만 알 수 있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고생했어."
그해 여름. 갑자기 아파 정신을 잃던 동생은 한 달 만에 제대로 눈을 떴고, 그 후로 천천히 회복해서 병원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계절 우리 가족은 많이 슬펐고 아팠지만 동생이 괜찮아진 후로는 눈물을 흘렸던 만큼 개운한 웃음을 지었다. 감사했다. 폭풍이 지나가니 좀처럼 잘 치워지지 않던 잔 먼지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조금 다른 곳에서 너답게 살아가는 거야.
슬로건으로 여겨야겠다고 다짐했던 엄마의 말은 가장 뜨겁고 슬픈 계절이 지나간 후에야 마침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고 나는 몇 개의 반짝이는 것들을 내 손에 움켜 잡았다. 그건 내가 즐기지 못해 안달 났던 런던의 여름보다 훨씬 더 반짝이는 것들이었다.
향수병이니 슬럼프니 나답게 사네 마네 했던 내면의 고민들은 동생이 아팠던 것에 비하면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는 것. 너무 감상에 젖어 스스로에게 갇혀있기에는 지금의 난 너무나 소중한 현재에 머물고 있다는 것.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내가 건강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는 것.
(마침내 찾아온 가을. 그해 여름이 담긴 필름사진은 한 장도 없다.)